메모리반도체는 성장성이 뛰어나고 경기 호황 국면에서 고수익을 거두는 산업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고정비 비중이 워낙 커 한번 공급 과잉이 나타나면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어렵다. 과거 악순환을 끝낼 수 있었던 유일한 돌파구는 ‘치킨 게임(chicken game)’이었다. 설비 확대 경쟁이라는 치킨 게임을 통해 경쟁자를 퇴출시키는 방식으로 강자가 살아남았다. 메모리반도체 산업의 기본적인 특징이 치킨 게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대만과 일본의 D램(DRAM) 메모리반도체 산업의 몰락으로 더 이상 치킨 게임은 의미가 없어졌다. 메모리반도체 산업을 이해하는 가장 근간이 되는 개념이 바뀌었다. 물리적 한계로 인해 미세공정의 핵심 기술이 더 발전하기 어려운 단계가 돼 공격적인 설비투자에 나서기도 쉽지 않다.

이런 변화로 과거와 같은 생산 경쟁과 수익성 훼손은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메모리반도체 산업이 내년에도 호황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하는 이유다.

○메모리반도체, 스마트폰 위주로 재편


예전엔 메모리반도체가 PC를 중심으로 사용됐다. 부품이 모듈화돼 있어 재사용이 손쉬웠다. 조립 PC 업체들의 난립으로 현물시장이 비교적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스마트폰으로 D램 메모리반도체 수요의 중심이 옮겨가면서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일단 부품 재사용이 어렵고 단순 조립업체가 거의 없다. PC와 달리 현물시장이 거의 형성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시간이 지날수록 가격이 떨어지긴 하겠지만 과거에 비해 안정적인 편이다.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메모리반도체 산업의 설비투자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매출 대비 설비투자 비율이 20~30% 수준까지 떨어졌다.

일부 품목에 대해선 매출 대비 60~70%까지 설비투자를 했던 과거와는 달라진 모습이다. 이 정도라면 D램 메모리반도체의 극심한 자본집약적(capital intensive) 특성이 바뀔 가능성이 높다. 설비투자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면서 메모리반도체 업체들의 잉여현금 흐름이 대폭 개선될 전망이다.

기술적 불확실성은 D램 메모리반도체의 공급곡선을 변화시킬 것이다. 계단형 모양을 보이던 D램 공급곡선의 기울기가 기술적 난도 증가와 생산성 확대로 인해 훨씬 완만한 형태를 띠게 될 것이다. 이는 과거에 비해 공급 부족 현상이 생각보다 길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년 반도체 산업은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의 수요 증가에 힘입어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다.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메모리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25%로, 1995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할 것이다.

○경쟁 치열해지는 비(非)메모리반도체


비메모리반도체 산업은 메모리반도체와 달리 과거에 비해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모바일 및 서버용 프로세서 설계와 파운드리 분야에서 정보기술(IT) 산업의 강자들의 격돌할 것이다.

PC 시대에는 인텔이 세계 반도체 산업을 지배했지만 모바일 중심의 시대에선 오픈 리소스를 통해 퀄컴, 애플, 삼성전자, 엔비디아, 미디어텍 등이 스마트폰과 태블릿PC용 프로세서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서버용 프로세서 시장에서도 새로운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서버를 제작해 직접 사용하고 있는 구글이 서버용 프로세서 설계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대형 IT 업체들이 반도체 산업에 직·간접적 관심을 보이며 향후 파운드리 시장도 바뀔 것이다.

대만·日 반도체 산업 몰락…'치킨게임' 사라져 호황  이어갈 듯
파운드리 업계에선 ‘독무대’를 누려온 대만 TSMC의 위상이 흔들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모바일 프로세서 분야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인텔이 대표이사를 교체하면서 파운드리에 발을 들여놓을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메모리반도체 업계의 ‘절대 고수’ 삼성전자도 자체 AP인 엑시노스 생산 외에 파운드리 분야에도 관심을 보이며 비메모리 라인을 확대하고 있다. ‘오일 머니’를 무기로 한 글로벌 파운드리도 첨단시설과 우수 인력들을 갖추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이승우 < IBK투자증권 기업분석팀장 swleesw@ibk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