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들 고된 땀방울, 관객 쾌감으로 바뀌더군요"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해를 품은 달’, 영화 ‘광해’ 등 젊은 세대를 주 타깃으로 한 퓨전사극이 내리 성공한 것을 보고 ‘이제 창극, 국악 등 전통 콘텐츠의 시대가 오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국립극장은 이런 시대적 흐름을 살짝 건드려줬을 뿐인데, 관객 반응이 이렇게 뜨거운 걸 보니 숨어있는 욕구가 정말 상당했던 것 같네요.”

지난 20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내 극장장 집무실에서 만난 안호상 국립극장장(54·사진)은 국립극장이 올해 올린 작품이 줄줄이 매진을 기록한 것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지난해 1월 국립극장장으로 취임했을 때 직원들에게 ‘국립극장을 관람권 구하기 어려운 극장으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며 “2년 만에 그 약속을 지키게 돼 꿈만 같다”고 덧붙였다.

국립극장은 올 한 해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 등 국공립 극장 중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다. 무용 ‘춤, 춘향’, 연극 ‘단테의 신곡’, 창극 ‘배비장전’, 오페라 ‘카르멘’ 등은 표가 없어 관객들이 공연을 못 볼 정도였고, 무용 ‘단’ ‘묵향’, 창극 ‘메디아’ 등은 파격과 혁신으로 공연 전문가와 일반 관객들의 이목을 끄는 데 성공했다. 국립극장은 60년 역사상 가장 뜨거운 한 해를 보내고 있다.

그는 레퍼토리 시즌제를 비결로 꼽았다. 레퍼토리 시즌제는 국립창극단·무용단·관현악단 등 국립 8개 예술단체의 공연을 사전에 미리 발표하는 제도.

“작품 하나만 바꿔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관객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작품을 만드는 밀도가 이전과 180도 달라졌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습니다. 예전에는 단체별로 신작을 1년에 한두 편 올렸어요. 그런데 지금은 많게는 8편까지 올립니다. 단원들의 입에서는 단내가 나죠. 한 작품을 공연하면서 다음 작품을 연습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예술가의 비명이 관객에게는 쾌감, 희열, 기대감으로 변할 것이란 확신이 있었습니다.”

1년치 작품을 한꺼번에 발표해 관객의 관심을 끌고자 했다. “서양의 극장에 가보면 오페라 ‘토스카’ ‘리골레토’ ‘마술피리’를 번갈아 공연해요. 그런데도 객석이 꽉꽉 찹니다. 오늘 ‘토스카’를 본 관객이 내일 ‘리골레토’를 보는 식이죠. 우리도 이런 관객층을 만들어야 시장이 커질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의 마케팅 비법은 적중했다. 지난 3월 창극 ‘서편제’가 좋은 반응을 끌더니 무용 ‘단’, 창극 ‘메디아’ 등이 연속 안타를 쳤다. 창극 ‘배비장전’을 보러 10대에서부터 8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이 1500석 자리를 빼곡히 메웠다.

“예전에는 한 작품을 만들 때 창극단 무용단 관현악단 등 3개 단체가 모여서 대작을 만들었어요. 예산이 많이 들었죠. 제작비를 줄이기 위해서 작품당 참여 인력을 25명으로 제한했습니다. 그렇다고 무대가 작아진 건 아니고요. 그렇게 하니 제작비가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차별성 없는 야외행사와 무료행사도 없앴습니다.”

그는 올 한해 최고의 성적표를 냈지만 앞으로 더 달려가야 한다고 말했다. “레퍼토리 시즌제가 뿌리를 공고히 내리려면 지금보다 작품을 더 많이 올려야 하고, 국립발레단의 김주원 김지영 같은 스타 예술가를 키워야 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앞으로 3년 안에 라이선스 뮤지컬과 경쟁할 수 있는 한국 대표 창극이 나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일본 다카라즈카 가극이 서양 뮤지컬과 경쟁하듯이요.”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