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 등 7개 부처 장관들이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의료·교육·고용 관련 규제 완화를 핵심으로 한 4차 투자활성화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현 부총리, 서남수 교육부 장관,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 등 7개 부처 장관들이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의료·교육·고용 관련 규제 완화를 핵심으로 한 4차 투자활성화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현 부총리, 서남수 교육부 장관,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정부가 전국 848개 의료법인에 영리 목적의 자회사 설립을 허용키로 한 것은 정치권과 이익단체 등의 반발로 10년째 법제화가 안 되고 있는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영리병원) 설립 문제를 우회 돌파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의료법인에 대한 자회사 허용은 국회에 상정해야 하는 법 개정 사항이 아니라 보건복지부 장관의 정책결정 영역이라는 것이 정부 측 설명이다.

의료산업 10년 묵은 과제 '투자 유치-수익 배당' 가능해져

○박 대통령 “의료사업 수익성 확보해야”

현재 의료법인은 자회사 설립은 물론 벤처캐피털 등의 투자를 받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로 인해 세계적인 수준의 의료 기술을 갖고 있어도 자금력 부족으로 해외 진출이나 해외 환자 유치가 무산된 사례가 한두 번이 아니다. 예를 들어 제주한라병원은 호텔과 병원이 결합된 ‘메디컬 리조트’ 설립을 15년째 추진하고 있지만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다. 600억원가량의 사업 초기 자금을 마련하지 못해서다. 길병원도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에 심혈관 전문병원 설립을 추진하고 있지만 병원 리모델링 등에 필요한 150억원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13일 무역투자진흥회의를 주재하면서 “다른 나라들은 열심히 뛰고 있는데 우리 의료기관만 진료비 수입만 보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은 참 가슴을 칠 일”이라며 “의료 분야 공공성이 손상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의료산업의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어야 청년 일자리도 만들어진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이번 조치로 의료법인 자회사는 앞으로 제약사·건설사·의료기기 회사 등과 손잡고 해외에 진출하거나 별도의 회사를 설립할 수 있게 된다. 여행사, 호텔 등과 함께 ‘해외 환자 유치 기업’을 만들 수도 있다. 정은보 기획재정부 차관보는 “수준 높은 우리의 의료 기술과 의료 인력을 활용해 해외에 병원을 수출하거나 해외 환자 유치를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방식으로 의료법인이 벤처캐피털이나 사모펀드 등과 자본합작 자회사를 설립할 수도 있다. 부대(영리)사업 범위도 여행업, 외국인 환자 유치업, 온천·목욕장업, 의약품·화장품 개발업 등으로 대폭 확대된다.

현재는 장례식장·주차장, 숙박·서점 등 8개 분야만 가능하다. 자회사가 벌어들이는 수익은 지분에 따라 투자자에게 배당하고, 나머지는 모회사인 의료법인에 돌아가는 형태를 띤다.

○보건·의료계 “영리병원 전 단계” 반발

의료산업 10년 묵은 과제 '투자 유치-수익 배당' 가능해져
하지만 이번 대책이 실질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시작은 병원 자회사 영리화이지만 결국에는 영리병원을 노린 것이라는 야당과 일부 의료계 및 시민단체의 반발이 예상된다. 실제 대한의사협회는 이날 성명서를 내고 “병원들의 경영이 어렵다는 점에서 투자 활성화를 유도한 것인데 처방이 완전히 잘못됐다”며 “사실상 영리병원 도입을 위한 사전 단계”라고 평가했다.

송형곤 의협 대변인은 “병원이라는 곳은 근본적으로 환자를 치료해서 경영이 돼야 하는데 다른 부대사업으로 먹고 살라는 것은 잘못된 해결책”이라며 “의료전문가와 논의도 거치지 않은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고 비판했다. 유지현 보건의료 노조위원장도 “의료법인의 자법인 허용은 주식회사 영리병원 허용의 전 단계”라며 “의료 본업보다는 환자를 대상으로 한 돈벌이 수익 사업이 횡행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이에 대해 “의료법인의 영리화는 전혀 고려치 않는다”며 “보건·의료의 공공성을 저해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시장과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안을 마련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약업계 반응은 엇갈려

2002년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판결에도 약사들의 반발로 도입이 늦춰진 ‘법인약국’ 설립 허용 방안도 다시 추진된다. 약사 한 명이 한 개의 약국만 운영할 수 있는 현행 약사법을 개정해 ‘1법인 복수약국’ 체제로 전환하는 것이다. 자본력만 뒷받침된다면 약사 한 명이 법인을 세워 여러 개의 약국을 운영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법인약국은 약사면허 소지자들이 지분을 투자하고, 투자액 한도에서 법적인 책임을 지는 유한책임회사 형태로 운영된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 대한약사회 등은 이번에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최헌수 대한약사회 홍보팀장은 “약국 법인을 허용할 경우 동네약국이 줄도산해 시민들의 접근성이 떨어질 것”이라며 “자본 논리로 의료시스템이 돌아가면 결국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이 급증한 미국을 닮아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일부 젊은 약사들과 자본력을 갖춘 약사들은 법인 약국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한 약사단체 관계자는 “지금의 영세 약국과 달리 대형화, 기업화되면 복지 혜택이나 고용 안정성이 나아질 것이란 기대가 젊은 약사들 사이에 있다”고 전했다.

김우섭/김형호/이준혁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