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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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재철 대표(53)는 28년 동안 대신증권에서 잔뼈가 굵은 ‘대신맨’이다. 1985년 공채로 입사해 작년 5월 대표이사로 선임될 때까지 서울 강서지역과 강남지역 본부장, 리테일사업 본부장, 홀세일사업 본부장, 기업금융사업단장, 인재역량센터장 등을 거쳤다. 영업 밑단에서 중요 사업본부까지 핵심 부서를 두루 책임졌던 만큼 증권업에 대해서는 속속들이 아는 베테랑이다.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맡은 지 벌써 1년 반이 지났지만 언론 앞에 좀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전문경영인은 실적으로 말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올해 초 비상경영을 선포하고 비용절감을 위해 갖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증권시장 거래대금이 3년 새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지면서 대신증권 역시 수익성 악화의 그늘을 피해가지 못했다. 하지만 나 대표는 “증권산업은 지금 바닥을 지나고 있다”며 “내년 업황은 물론이고 대신증권의 실적도 올해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과 순익이 적자전환했는데, 향후 실적 회복을 위한 복안이 있습니까.


“별도 기준 상반기 순이익은 33억원으로 흑자였습니다. 하지만 주요 계열사들의 부진 탓에 연결기준으론 적자가 났습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이익을 내는 것보다 지키는 게 중요합니다. 내년에는 법인영업과 투자은행(IB) 등 본사 부문 실적을 강화하는 데 중점을 두고, 리테일(소매영업) 부문에서는 미래를 위해 자산을 늘리는 데 역량을 집중할 계획입니다. 내년이면 저축은행을 인수한 지 3년째입니다. 그동안 부실을 상당 부분 털어낸 만큼 내년은 저축은행을 비롯한 주요 계열사들이 흑자전환하는 원년이 될 것으로 봅니다.”

▷많은 증권사가 자산관리 비중 확대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차별화된 전략이 있습니까.

“자산관리 영업의 선두에 설 ‘금융주치의’들이 핵심입니다. 프라이빗뱅커(PB)는 위험자산을 팔 자격을 갖춘 인력을 말합니다. 그 개념대로라면 증권사 영업직원들은 모두 PB입니다. 금융주치의는 단순히 상품만 판매하는 게 아니라 글로벌 자산시장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고 고객의 체질에 맞는 정확한 포트폴리오와 상품을 구성할 능력을 가진, PB보다 한 단계 높은 전문 인력을 가리킵니다. 올해 새로 선발한 금융주치의들에 대해서는 기존 영업점 직원들보다 강도 높은 교육을 통해 역량을 끌어올리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금융주치의가 각 지점의 대표 PB가 되는 겁니까.

나재철 대신증권 대표 "증권업 지금 바닥 지나…주요 계열사들 내년 흑자전환"
“아닙니다. 금융주치의가 없는 지점도 있습니다. 아직은 지점별로 한두 명밖에 없지만, 앞으로 늘려나갈 계획입니다. 일본 증권회사들은 지점이 적은 대신 팀제 영업을 많이 합니다. 닛코증권 도쿄지점은 직원이 150명이나 됩니다. 주식 브로커리지(위탁매매) 위주의 영업에는 소규모 점포가 많이 필요하지만, 자산관리는 다양한 시각을 가진 전문가가 많은 대형 점포가 적합합니다. 작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점포 효율화와 대형화는 그런 전략의 일환입니다.”

▷증시 침체에도 불구하고 2년 새 고객 예탁자산이 크게 늘었습니다. 비결이 뭔가요.

“상품 개발에 역량을 쏟아부었습니다. 자산관리 영업에서는 결국 상품 개발 능력이 각 증권사의 경쟁력을 좌우합니다. 작년과 올해는 브라질채권 우리다시채권(이종통화채권) 등 해외 채권을 경쟁사보다 앞서 들여와 높은 판매실적을 올렸습니다. 주가연계증권(ELS)과 파생결합증권(DLS)은 안정성을 강화했습니다. 주식시장 변동성이 커졌지만, 판매된 상품 중 녹인(knock-in·손실 확정)된 상품은 많지 않습니다. 지난 8월 한시적으로 선보였던 KT와의 통신비 할인 제휴 서비스도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20~30대를 중심으로 종합자산관리(CMA) 계좌 수가 한 달여 만에 10% 가까이 늘었습니다. 엄청난 효과입니다. 통신비 지원으로 상당한 비용이 들지만,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을 수준입니다. 앞으로도 허투루 쓰는 비용을 줄여 고객에게 확실히 메리트를 줄 수 있는 특화된 서비스를 발굴해나갈 계획입니다.”

▷증권·자산운용사와의 제휴를 통해 해외 네트워크를 꾸준히 넓히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역시 상품 개발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입니다. 장기적으로 해외 투자에 관심을 갖는 고객층이 넓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안정적이고 수익성 높은 해외 상품을 발굴해 들여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수익 확보 차원에서도 해외 비즈니스엔 오랜 시간 공을 들여왔습니다. 그 결과 성과도 내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만디리증권에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을 수출하면서 수수료 수입을 공유하는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아직 이익 기여도는 미미하지만, 3년째 꾸준히 수수료 수익을 내고 있습니다. 태국과 말레이시아 등 다른 아시아 지역 증권사들과 비슷한 비즈니스 모델로 정보기술(IT) 시스템 수출을 위한 논의를 진행 중입니다.”

▷우리투자증권을 인수한다면 ‘명가 재건’의 꿈을 더 빨리 이룰 수 있을 텐데요.

“좋은 인력도 많고 매력적인 회사라 관심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수익을 안정적으로 가져가기 위해서는 단번에 덩치를 키우는 것보다 장기적으로 신사업을 통해 수익원을 다각화하는 전략이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우리F&I의 경우 부실채권 자산관리회사(AMC)로서 갖고 있는 자산관리 노하우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부실채권(NPL) 사업은 시장 규모가 6조~7조원대를 꾸준히 유지하는 영속성이 있습니다. 비싸게 살 생각은 없지만 우리F&I나 우리파이낸셜 정도면 NCR(영업용순자기자본비율)에 영향 없이 인수가 가능할 것으로 봅니다.”

▷인수에 실패할 경우 추가적인 M&A 계획도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이번에 실패하더라도 추가 인수합병(M&A) 기회는 많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대상은 국내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몇 년 전 해외 헤지펀드 운용사를 인수하려고 두 번이나 시도했다가 가격이 맞지 않아 포기했습니다. 그때 경험을 통해 해외 금융회사에 대한 분석 노하우가 생겼습니다.”

▷저축은행이나 자문사를 인수할 때도 그랬지만 항상 업황이 어려울 때 M&A를 하는데요.


“지금처럼 불확실성이 클 땐 ‘리스크 매니지먼트’보다 ‘리스크 인텔리전스’가 중요합니다. 과거 실수의 재발을 방지하고 앞으로 일어날 리스크를 회피하는 것만으로는 수익성을 끌어올릴 수 없습니다. 위험요인을 짊어지고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해서는 평소 시나리오별 경영 계획이 잘 짜여 있어야 합니다. 대신증권의 리스크 관리 능력은 ‘리스크 인텔리전스’로부터 나옵니다. 지난 50년간 쌓아온 노하우입니다.”

▷대신증권은 ‘신뢰를 중시하는 회사’라는 이미지가 강합니다. 최근 몇 년간 금융투자업계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도가 크게 낮아졌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오너들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 금융회사는 공공재의 성격을 띠고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증권사 스스로가 원칙을 지키는 수밖에 없습니다. 또 불공정한 행위를 했을 때는 살아남을 수 없게 과감한 구조조정이 필요합니다.”

강지연 기자 sere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