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대연정 타결…더 힘받는 메르켈 집권 3기
“사회민주당 의원들은 새로운 지도자 메르켈이 얼마나 강인한지 실감한, 기억에 남는 밤이었을 것이다.”

17시간30분의 밤샘 마라톤 협상 끝에 중도좌파 사회민주당(사민당·SPD)과 대연정 협상을 타결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뚝심을 독일 일간지 벨트가 27일(현지시간) 이같이 평가했다.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기독민주당(기민당·CDU)-기독교사회당(기사당·CSU) 연합은 27일 새벽 5시께 사민당과 대연정 구성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메르켈 총리는 다음달 17일부터 세 번째 임기를 시작할 예정이다.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기민당-기사당 연합은 지난 9월22일 총선에서 41.5%의 높은 득표율로 압승했으나, 현 연정 파트너인 자유민주당이 원내 의석을 한 자리도 확보하지 못함에 따라 사민당과의 좌우 대연정 협상을 2개월 동안 해왔다.

세 정당은 26일 오후 15명의 핵심 간부만 참석하는 소그룹 협상으로 시작했다. 애초 7시부터는 실무진을 포함해 총 77명이 참석하는 난상토론 형태의 확대협상으로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메르켈의 강력한 요구로 나머지 62명을 배제한 채 7시30분부터 소그룹 협상을 재개했다. 이미 6시간 이상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이던 15명은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메르켈은 그러나 이때부터 공세의 강도를 서서히 높이기 시작했다. 27일 새벽 1시께에는 메르켈과 지그마르 가브리엘 사민당 당수, 호르스트 제호퍼 기사당 당수의 3자 회담을 통해 대다수 쟁점에 관한 이견을 좁혔다.

양당 간 견해차가 가장 컸던 연금제 개혁에 관한 합의가 밤 12시를 넘어 처음으로 이뤄졌다. 45년간 연금 납부를 한 경우 연금 수령 시기를 63세로 낮추자는 사민당의 요구를 받아주면서 기민당이 내세운 어머니연금(1992년 이전 출산한 여성에게 주는 연금) 확대를 관철했다. 기민당 내부에서도 논란이 된 최대 월 850유로의 저소득층 생활보장 연금도 일괄 타결했다.

시간당 8.5유로의 전 직종 최저임금제 도입, 외국 등록 차량에 대한 고속도로 통행료, 이중 국적 허용 등 사민당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전제 조건을 달았다. 메르켈은 부자 증세 등 세금인상 요구를 봉쇄했고, 복지 확대를 위한 재원 마련으로 적자 재정 편성 요구를 방어하는 데도 성공했다. 이날 협상에서 가장 까다로웠던 점은 공약 시행을 위한 재원 규모 책정 문제였다. 애초 사민당이 요구한 재정 증액 규모는 300억유로였으나 협상 과정에서 사민당의 공약을 시행하려면 총 460억유로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메르켈은 애초 100억유로로 맞섰다.

이날 밤샘 협상에서 사민당이 요구한 초등학교 전일제 수업 시행을 배제했고, 광대역 브로드밴드 초고속 인터넷망 확충도 미루는 등 한 가지씩 양보하면서 결국 230억유로에 타협했다. 각료직 배분은 당원 승인 투표 이후 논의하기로 했다.

사민당은 다음달 14일 47만명의 당원 투표를 통해 합의안 수용 여부에 대한 표결을 진행한다. 당원 중에는 2005~2009년 메르켈이 주도하는 대연정에 참여한 이후 총선에서 참패한 경험이 있어 대연정에 거부감이 적지 않지만, 협상 타결안이 부결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관측된다. 사민당이 내세운 요구 조건 중 부자 증세 등 세금 인상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수용됐기 때문이다.

향후 메르켈이 이끌 정부는 세율을 올리지 않는 대신 정부 부채를 줄이기 위해 더욱 매진할 것으로 보인다. 메르켈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2017년에는 국민의 삶이 지금보다 더 나아질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며 “증세를 하지 않기로 한 것은 중산층과 중소기업에 좋은 일이고, 특히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후 메르켈 총리는 글로벌 주요 현안을 비롯해 빈곤층 확산과 과도한 수출 의존형 경제구조 등 독일 내부 개혁에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