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던 필리핀 경제 '슈퍼 태풍'에 휘청
슈퍼 태풍 ‘하이옌’을 만난 필리핀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다. 관측 사상 최악의 태풍으로 하루 새 1만여명의 사망자가 속출하고 중남부 지역 일대가 초토화된 11일 필리핀 증시는 전장 대비 1.42% 하락했다. 달러 대비 페소화 가치는 0.60% 떨어졌다. 올해 사상 처음 ‘투자적격’ 국가 등급을 받는 등 승승장구해온 필리핀 경제에 브레이크가 걸리는 양상이다.

필리핀은 지난 4분기 연속 7%대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달성했다. 올해 세계 3대 신용평가사로부터 ‘투자적격 국가’ 판정을 받았고, 신용등급도 일제히 상향 조정됐다. 글로벌 경기침체와 신흥국 위기설 속에서도 꿋꿋이 안정적인 성장세를 유지하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의 ‘안전한 투자처’로 급부상했다.

그러나 자연재해는 필리핀 경제의 고질적인 리스크 요인이다. 필리핀 수도 마닐라는 재보험사 스위스리가 꼽은 ‘자연재해에 가장 취약한 도시’ 순위에서 616개 도시 중 1위다. 아시아개발은행이 추산한 태풍과 지진으로 인한 필리핀의 경제적 손실은 한 해 평균 16억달러(약 1조7000억원)에 달한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경제 성장을 이끌어낸 건 2010년 부임한 베니그노 아키노 대통령이었다. 필리핀 정부는 업계의 반발에도 주류세 및 담뱃세 세율을 인상해 세수를 확충하는 등 과감한 개혁을 단행했다. 또 ‘굿 거버넌스’를 통해 부정부패 타파와 대국민 지원 확대, 친기업 환경 조성 등의 캠페인을 펼쳐왔다. 그 결실은 지난해부터 양호한 거시지표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태풍 ‘하이옌’으로 인한 경제적 비용은 최소 6080억페소(약 15조원)가 들 전망이다. 필리핀 정부는 현재 긴급 구호자금 230억페소를 모으긴 했지만 기존 정부 예산 투입이 불가피하다.

아키노 대통령은 당초 2016년까지 8240억페소(약 20조3000억원)를 공공부문 개혁에, 2950억페소(약 7조3000억원)를 식량 구호 사업 등 인프라 구축에 집행할 예정이었다. 필리핀 정부는 민관협력사업을 통해 현재 60개의 인프라 공사를 진행 중이다. 블룸버그통신은 “500개의 학교와 민다나오공항 병원 도로 철도 등 모든 민관협력 사업이 중단되거나 차질을 빚을 것”이라고 전했다. 파라크리티 소팟 바클레이즈 이코노미스트는 “재난이 필리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규모를 예측할 수조차 없다”며 “이번 대재앙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아키노 대통령의 두 번째 정치적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