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은행(Fed)이 양적완화 정책을 유지하기로 했다. 제로 수준(0~0.25%)인 기준금리도 동결했다. Fed는 미국 경제가 완만한 속도로 확장하고 있지만, 실업률이 여전히 높아 경제가 회복된다는 증거를 더 기다리기로 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미국의 불확실한 재정 정책이 경제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는 평가도 내놓았다. 지난 9월 회의 때와 달라진 게 없는 진단이다. 예상됐던 결과다.

재닛 옐런 부의장이 차기 의장 후보자로 지명됐던 당시부터 연내 양적완화 종료는 물 건너갔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게다가 실업률 6.5% 이하, 장기 물가상승률 2.5% 이상이라는 두 가지 전제조건은 여전히 충족되지 않고 있다. Fed는 이번에도 출구전략 시간표를 제시하지 않았다. 국채와 모기지 채권을 매달 850억달러까지 매입하던 것을 줄이는 이른바 테이퍼링은 당분간은 없다는 메시지로도 읽힌다.

과연 양적완화를 거둬들일 수 있을지부터가 의문이다. 미국은 만성적인 재정적자로 국채를 계속 발행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국가부채가 급증하고 있다. 미 국가부채는 지난해 GDP의 100%를 넘었고 올 5월엔 16조7000억달러였던 부채한도를 모두 소진했다. 급기야 지난달 셧다운(정부 일부폐쇄)까지 겪은 끝에 간신히 민주당과 공화당의 협상으로 부채한도를 늘리고 잠정예산안을 처리하면서 국가부도를 모면했던 터다. 물론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미국은 이미 국채가 만기되면 새로운 국채를 찍어 원리금을 지급하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 여기에 연 7000억달러의 예산이 들어가는 오바마케어까지 추가됐다. Fed가 매입해주지 않으면 국채를 소화할 수 없다. 테이퍼링을 안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중앙은행은 이렇게 재정적자의 시녀가 되고 말았다. 국가는 부채를 쌓고 중앙은행은 타락하고 있다. 내년 2월이면 또 셧다운 협상을 해야 한다. 이것이 미국 경제의 진정한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