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식같은 무선전화기가 타들어가는데...내 몸이 타는 것 같았다"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선언 20주년을 맞아 삼성 주요 경영진들이 절박하고 애탔던 당시의 상황을 회고했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 신종균 삼성전자 IT&모바일(IM)부문 사장 등은 28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신경영 20주년 만찬행사에 참석해 오늘날 일류기업 삼성을 있게 한 원동력이 된 신경영 선언을 돌아봤다.

신경영 선언은 1993년 해외 출장 때 매장 한 켠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삼성 제품을 본 이 회장이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고 했던 선언을 말한다. 이후 삼성은 '양'에서 '질'로 끊임없는 체질변화와 사업혁신을 추진해 연매출 320조원(그룹 매출)의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했다.

권 부회장은 '전자는 암 2기다, 삼성은 이미 망한 회사다'고 호통쳤던 이 회장의 말을 회고하며 "이 정도면 잘하고 있는데, 처음엔 자존심도 상하고 서운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이 회장 말씀을 들을수록 위기감이 절절하게 느껴졌다"고 회상했다.

신 사장은 신경영 선언이 있은 지 2년 뒤인 1995년 삼성전자 구미사업장에서 행해진 '불량제품 화형식'을 떠올렸다.

그는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는다"며 "500억원 어치, 내 자식같은 무선전화기가 타들어가는 걸 보니 내 몸이 타는 것 같았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그 화형식이 계기가 돼 우리 가슴속에 있는 불량에 대한 안이한 마음을 털끝만큼도 안남기고 태워버렸다"며 "갤럭시 등 최근 무선사업부의 성과는 바로 거기서 시작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부근 삼성전자 소비자가전(CE)부문 사장은 "이 회장은 1990년대부터 디자인경영을 하고 소프트경쟁력을 강조했다"며 "당시만해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얘기엿지만, 그런 무형의 가치가 명품과 평범한 것의 차이였다"고 말했다.

이어 "이 회장의 앞선 안목과 생각이 결국 지금 세계 소비자들에게 사랑받는 삼성의 명품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이날 행사에서 영상메시지를 통해 "초일류기업을 향한 원대한 꿈을 안고 달려온 결과 창업 이래 최대 성과를 이루고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자만하지 말고 위기의식으로 재무장해야 한다"며 "어떤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초일류를 향한 새로운 첫발을 내딛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행사장 로비에는 삼성 27개 계열사가 사업 특성에 맞게 신경영을 상징하는 30개의 조형물을 제작해 전시했다.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에서는 '창조적 비상'을, 삼성생명은 '삼성인의 진화'를, 삼성중공업은 '해양도전과 창조, 혁신'을 주제로 조형물을 만들었다.

이 회장과 부인 홍라희 리움미술관장, 이재용 부회장 등이 모두 참석한 이날 행사에는 삼성 계열사 사장단과 부사장단, 협력사 대표 등 350여명이 자리를 함께했다.

한경닷컴 권민경 기자 k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