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리한 가격인상의 비밀
얼마 전 우유값이 올랐다. 흰 우유가 L당 200원 이상 오르고, 초코우유와 딸기우유 등 가공유, 요구르트 등의 발효유도 잇따라 가격이 상승했다. 가격 인상이 하루 아침에 결정된 것은 아니다. 우유업계는 오래 전부터 가격인상 계획을 밝혀왔다. 물가 상승을 우려한 정부가 인상 자제를 요청하면서 미뤄져 온 것이었는데, 이번에 업계 대표주자 격인 회사가 먼저 총대를 멘 것이다.

문제는 소비자들의 반발이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성명서를 내고 “이번 인상은 소비자단체와의 약속을 무시하고 전격적으로 발표된 점이라는 데 분노를 금할 길이 없다”고 했다. 소비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뿐만 아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가격 결정과 관련해 부당 거래행위가 있지 않았는지 조사를 요구했다.

‘즉석밥’ 업계는 더 심한 곤욕을 치렀다. 즉석밥은 대표적인 서민식품이라는 점을 감안, 제조회사는 10년 동안 한 번도 가격을 올리지 않았다. 하지만 치솟는 곡물가격 때문에 원가 압박이 심해지면서 어쩔 수 없이 가격을 올렸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10년 만에 처음으로 가격을 올린 것인데도 언론과 소비자들이 벌떼같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대기업이 밥 팔아서 돈 몇 푼 더 벌어보겠다고 소비자들에게 횡포를 부린다’며 불매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판매량도 줄어들었다. 하지만 억울해만 하지 말자. 소비자들이 가격 인상에 왜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파악하면 욕 먹지 않고도 가격을 올릴 수 있다.

소비자들의 마음 속에는 심리적인 ‘가격 지도’가 그려져 있다. 비누나 샴푸, 운동화 같은 물품들이 가격 순으로 마음 속에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다른 물품들은 제자리에 있는데 어느 하나가 갑자기 가격이 바뀌게 되면 소비자들은 혼란을 느낀다. 그 이유가 알고 싶어진다. 납득할 수 있다면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구나’ 하고 넘어가지만, 받아들이기 어렵거나 기업들이 이유를 설명조차 안 해주면 분통을 터뜨리게 된다.

그러니 가격 인상을 대하는 소비자들과 기업의 시선은 ‘금성에서 온 소비자, 화성에서 온 기업’ 만큼이나 다르다. 소비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정당성’이 아니라 ‘납득성’이란 걸 기업들은 간과한다. 가격을 올릴 때마다 기업들이 단골로 써먹는 메뉴는 “원가가 올라갔기 때문에 우리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오를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기업의 원가에는 별 관심이 없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은 가격을 꼭 올릴 수밖에 없었는지 자신이 납득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습 인상은 금물이다. 소비자들의 반발이 가장 거세지는 경우는 기습적으로 값을 올리는 경우다. 에르고베이비라는 미국의 한 유아용품 회사는 가격을 올리기 6주 전에 이 사실을 매장과 홈페이지에 공지했다. 이와 더불어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는 자세한 이유까지 같이 알렸다. 본사에서 공급되는 원가가 30% 이상 높아져서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게 돼 죄송하다고 사과문을 작성한 것이다. 가격 인상이 적용될 정확한 날짜와 품목도 공지했다. 이렇게 하니 소비자들은 마음의 여유를 갖고 필요한 제품을 미리 사 둘 수 있었고, 비싸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는 점에서도 저항감 적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가격 인상제품과 인하제품을 함께 제시하라는 것이다. 실제로 모 음료수 업체는 올해 초 인기 제품 10개의 가격을 올리면서, 매출 규모가 작은 6개 제품은 가격을 내렸다. 그리고 ‘원부자재 가격이 오른 제품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가격 인상이 불가피했습니다. 반면 원가가 낮아진 제품도 있어 가격 인하도 동시에 진행하게 됐습니다’고 발표했다. 가격을 올리기만 했다면 소비자들은 ‘진짜 원가 오른 거 맞아?’라고 의심했을 텐데, 이렇게 하니까 ‘내린 것도 있으니 이번 가격 조정은 믿을 수 있겠네. 진짜 원가가 올라서 가격을 올렸나 보네’ 하고 생각하게 됐다.

소비자들이 가격 인상에 반발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기들이 존중받고 있지 못하다는 기분 때문이다.

그러니까 기업 입장에서 부득이하게 가격을 올려야 하는 경우라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소비자들과 소통해야 한다. 기업 입장을 일방적으로 알리는 것보다는, 소비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주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이우창 <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