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지방재정 방치하면 건전재정은 없다
지난 8월 연봉 3450만원이 넘으면 근로소득세가 인상되는 세제개편안이 공개돼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야권이 ‘세금폭탄’이라며 촛불을 들이대자 박근혜 대통령이 금방 두 손을 들었다. 기획재정부 세제실은 잔뜩 얻어터지고 나서 수정안을 내놨다. 복지는 달콤하지만 세금은 쓰디쓰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각인됐다.

오히려 잘된 측면도 있다. 계속 부풀려지던 선심성 복지가 자제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기 때문이다. 얻어터진 세제실 덕분에 예산실이 한숨 돌리게 됐다. 예기치 못한 돌출도 생겼다. 기초연금을 국민연금과 연계시켜 조정하려는 청와대 방침에 대통령의 복심(腹心)으로 인식되던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이 감투를 내던지는 초강수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수많은 미래의 불확정 변수에 따라 변동될 연금 수령액을 놓고 정치적 포지션에 따른 말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확실한 것은 정부가 욕을 먹으며 부담을 줄여봤자 내년에는 국가채무가 500조원을 넘어서고 공공기관 채무까지 더하면 미래 세대 부담이 폭발적으로 늘어난다는 점이다.

기초연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돈이 걸린 지방공약도 큰일이다. 지방공약 실행방향을 주도할 지역발전위원장과 지방자치발전위원장을 충청권 출신 정치인이 모두 맡은 것도 특이하다. 내년 6월4일로 확정된 지방선거에서 결정적 변수로 작용할 지방공약의 향방을 놓고 여야 정치권의 눈치싸움도 치열하다.

한국 지방자치는 재정 대부분을 중앙정부에 의존하는 반쪽짜리다. 국세와 지방세 세수 비중은 8 대 2 정도인데 세출에서 중앙과 지방 비중은 4 대 6 수준이다. 국세 수입 중에서 절반 정도는 지방에서 넘겨받아 쓴다는 의미다. 단체장마다 예산을 한 푼이라도 더 따내기 위해 기재부와 국회를 들락거린다. 지역구 국회의원까지 가세한 지역예산 따내기 경쟁은 치열하고 무원칙한 ‘쪽지예산’까지 난무한다.

예산을 탈 없이 쓰기 위한 전시성 사업도 요란하다. 사업성을 부풀린 부실 대형사업이 줄지어 좌초되고 있다. 용인 경전철, 태백 오투리조트, 인천 월미 관광철도, 평창 알펜시아리조트는 대표적 부실이다. 소속 정당이 바뀌어 새로운 단체장이 뽑히면 전임자 사업 ‘깎아내리기’로 야단법석이다. 예산낭비 현장이 자중지란으로 금방 확인되는 셈이다.

국세와 지방세 세목을 조정해 재정자립도를 높이고 지방행정체제의 합리적 개편으로 효율을 제고해야 한다. 김영삼 정부 출범 당시 단체장 직선 공약을 제대로 이행하기 위해선 지방세제 및 행정체제 개편을 먼저 마무리했어야 했다. 지방선거를 미룰 요량으로 어물거리다 국회가 갑자기 선거일정을 확정하는 바람에 단체장 임명시절의 교부세 중심 지방재정이 그대로 고착된 것이다.

국세 중에서 지방세로 넘기기에 적합한 것은 부가가치세 등 소비세다. 소비세를 판매장 소재지에 귀속시키면 지역 주민의 지역 내 구매동기를 유발해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 서울 등 수도권과 기타 지역에 대한 귀속비율을 차등 적용함으로써 재정자립도의 불균형을 줄일 수 있다. 현재의 지방소비세와 같이 지역별 배분비율을 판매실적과 무관하게 정하면 지방세로 전환하는 효과가 반감된다.

그 밖에 지역별 자주세목을 개발하고 지역 출향민이 출신지에 지방소득세 중 일부를 귀속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서울시의 재정자립도가 전국 평균보다 훨씬 높은 상태가 지속되면 막강한 재력을 배경으로 ‘하늘이 두 쪽 나도 무상보육 계속’ 운운의 광고가 계속될 것이다.

시·군 및 자치구로 구성된 기초단체의 경우 적정수준으로 통합해야 한다. 특별시·광역시의 자치구와 대규모 시에 소속된 행정구 사이의 불균형도 심각하다. 인구 5만명 미만의 자치구에서도 구청장을 뽑고 구의회가 유지되는 반면 구청장이 임명되는 행정구인 성남시 분당구는 인구 49만명을 넘어섰다. 기초자치단체인 인구 116만명의 경기 수원시는 광역자치단체인 일부 광역시보다 인구가 많다. 지방세제와 지방행정체제의 합리적 개편은 건전한 국가재정을 위한 필수 과제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만우 < 고려대 경영학 교수 leemm@kore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