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기자들과 막걸리를 앞에 놓고 만난 박병엽 전 부회장(오른쪽).
한경 기자들과 막걸리를 앞에 놓고 만난 박병엽 전 부회장(오른쪽).

팬택의 창업자 박병엽 부회장(51)이 사임하겠다고 발표한 지난 24일 이후 그를 세 차례 만났다. 첫 번째는 사임을 발표한 날 밤 기자 2명(김광현 심성미)이 서울 평창동 집 앞에서 4시간 기다렸다가 귀가하는 그를 만났다. 박 부회장은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했다. “구성원(임직원) 800명 내보내고 사임하는 놈이 무슨 말을 하겠느냐”는 게 이유였다. “나중에 식사나 하자”는 약속을 받고 헤어졌다.

두 번째는 27일 밤 경기대 앞 생선구이집에서 만났다. 차병석 IT과학부장과 기자 2명이 3시간 동안 막걸리 12병을 마시며 박 부회장과 얘기를 나눴다. 그는 경쟁사 덤핑 공세를 비판할 땐 언성을 높였고, 팬택 임직원에 관해 얘기할 땐 “우리 구성원, 우리 구성원” 하며 울먹이기도 했다. 세 번째는 28일 점심 때 26년지기 김광현 기자가 한국경제신문 앞 설렁탕집에서 만났다.

두 번째 만남을 중심으로 대화를 정리한다. 현장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박 부회장의 어투를 그대로 썼다.

▷사퇴에 대해 가족들은 뭐라고 하는가.

지난 27일 늦은 밤 서울 충정로3가의 한 허름한 생선구이집에서 만난 박병엽 전 팬택 부회장이 퇴임 후 심경과 앞으로의 계획 등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얘기하고 있다.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지난 27일 늦은 밤 서울 충정로3가의 한 허름한 생선구이집에서 만난 박병엽 전 팬택 부회장이 퇴임 후 심경과 앞으로의 계획 등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얘기하고 있다.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힘들어하지. 겉으로는 ‘잘했다’고 하지만 불안하겠지. 다만 나를 믿기에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 같아. 내가 능력은 없지만 열심히는 하잖아. 부딪치고 깨져도 쓰러지지 않고 다시 일어나고…. 애들(미국 유학 중인 두 아들)이랑 통화도 했지. ‘아버지 고생하셨어요’라고 해. 그래서 ‘(경제적으로) 힘들어질 수도 있다’고 했더니 ‘아껴 쓸게요. 아버지 파이팅하는 모습 좋아요’ 이러는 거야. 고맙지.”

▷무엇을 하려고 하나.

“우선 쉬고 싶어. 내가 박병엽인데, 노력하는 것으로는 일등인데, 밥은 먹고 살지 않겠나. 둘째가 입대하려고 귀국했다가 ‘흔들리는 마흔, 이순신을 만나다’란 책을 선물하고 갔어. 이순신 장군. 내가 존경하는 분이야. 그분이 이렇게 말했어. ‘가난하다고 탓하지 마라. 병약하다고 탓하지 마라. … 아직도 나에겐 열두 척의 배가 있다.’ 나는 아직 젊어. 열심히 살면 되지 않겠어?”

▷임직원 800명을 정리한다고 했는데 심정은 어떤가.

“오늘(27일) 서울 본사 650명한테 통보했을 거야. 화가 나겠지. 가슴이 저민다. 기업을 한다는 게…. 그게 길이야. 회사는 살 거야. 분명히 살아날 거야. 내가 경영을 잘못했어. 선제적으로 구조조정을 한다면 기회가 올 거야. 구성원들이 참아줄 거라고 생각해. 얼마나 서로를 아파했으면 구성원 3분의 1을 그렇게 하는데 단 2~3일 만에 조용해지겠나. 다음주부터는 다시 해보자는 분위기가 될 거야.”

▷삼성 애플은 멀어져가고 중국 업체들은 추격해오는데 살아나겠나.

“중국 업체들은 아직 몇 가지 점에서 부족해. 기술 지향적 사고, 기술을 대하는 마인드, 인간 냄새 나는 기술, 소비자 지향적 문화, 이런 게 없어. 우리 업체들은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했잖아. 한국에서 잘하면 글로벌이 될 수 있어. 한국은 대기업 아니면 장사하기 어려운 건 사실이야. 계열사끼리 사주고 협력사 동원해 사게 하고…. 우리가 이런 시장에서 싸워서 그런(10%대) 점유율을 갖는다는 것은 의미가 있어.”

▷팬택 규모가 너무 작아 불리하지 않겠나.

“불리하지. 하지만 10년 전을 생각해 봐. 우리가 현대큐리텔 인수하고 나서 1년 반 만에 점유율을 1%에서 11%로 끌어올렸어. 그 뒤에 세계 시장으로 나갔거든. 한국에서 11%면 언제든지 글로벌 시장으로 나갈 수 있는 기술과 역량을 갖췄다는 뜻이야. 불리할 땐 빨리 본진으로 돌아와 전열을 정비해야지. 지금은 세가 불리하잖아. 팬택이 전투에서는 졌지만 전쟁이 끝난 건 아냐.”

▷박 부회장 없이 팬택이 잘할 수 있을까.

“이준우 신임 사장, 대단한 친구지. 정직한 사람이야. 실력도 있어. 통찰력 있고 배짱도 있고. 게다가 대단한 친구들이 옆에서 보좌하고 있어. 2년 전부터 경쟁시키면서 대비했지. 두고 봐. 팬택 살아날 거야. 2년 정도 고생하겠지.”

▷노키아가 잘나갈 때 투자유치가 성사될 뻔했다고 하던데.

“올릴라 요르마가 CEO(최고경영자)였을 때 아무도 모르게 노키아에 갔지. 투자 끌어들이려고. 다 됐었어. 투자하기로 하고 서명을 어디서 하느냐 협의하는 단계에서 노키아 측이 갑자기 못하겠다고 통보를 해온 거야. 팬택이 궁지에 처한 걸 알고 팬택 죽이면 미국에서 자기네한테 유리할 거라고 판단했던 것 같아. 그게 깨지고 나서 두 달 뒤 워크아웃 들어갔어.”

▷모토로라가 구글에 넘어가고 노키아가 마이크로소프트에 인수됐는데.

“스티븐 엘롭이 CEO가 된 직후에 노키아랑 제휴를 협의했어. 내가 제안했지. ‘노키아 특성만 고집해서는 안 된다. 우리 제품에 노키아 브랜드 붙여서 제품을 다양화해라.’ 성사됐다면 많이 달라졌을 거야. 모토로라도 자기네 표준만 고집하다 그렇게 된 거야. 세계 표준이 되려고 했던 게 모토로라의 오류였는데 노키아도 그렇게 한 거야. 지금은 애플 삼성이 이런 오류에 빠질 수 있어. 삼성은 다양한 제품을 내지만 팬택 제품 가져다 자기네 브랜드 붙여도 문제 없어.”

▷돈을 벌었을 때 사업을 그만둘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는데, 후회는 없나.

“한때 내 재산이 7000억원대라고 하더구만. 나는 돈에 대해선 덤덤한 편이야. 쩨쩨하고 싶진 않거든. 돈보다 가치 있는 게 있어. 보람이란 거야. 우리 물건이 팔릴 때, 히트할 때, 미국 AT&T CEO 만나서 맞담배 피우고…. 이럴 땐 엔돌핀이 돌지. 구성원들 기뻐하고. 갑자기 보너스 주면 눈빛이 달라지거든. 구내식당에서 마주치면 큰 소리로 ‘부회장님!’ 하고 인사하고…. 워크아웃 시절에도 경영성과 나오면 챙겨주곤 했어. 회사 어려울 때 부서 간 갈등 푸느라 피자 값, 치킨 값으로 3000만원 쓴 적도 있어. 내 개인 돈으로 줬지.”

▷돈보다 보람이 중요했다는 얘기인가.

“외환위기 때 회사가 어려워 모토로라를 2대 주주로 끌어들였잖아. 그때 모토로라가 우리를 찾아왔다고 생각하냐? 내가 스물한 번 찾아갔어. 영어도 못하는 놈이 매니저부터 만나기 시작해 CEO까지 만났어. 그랬더니 회사를 내놓으래. 나더러 400억, 500억원을 줄 테니 먹고 떨어지라는 거야. 고개를 젓고 합작하자고 했지. 돈보다 중요한 게 보람이야.”

▷팬택이 재무구조가 탄탄한 기업에 팔리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내가 나온 이유가 뭐겠어. 뭘 함축하고 있겠어. 우리 구성원들 행복하고, 더 이상 아파하지 않고, 잘할 수 있다면 팬택 이름 떼도 괜찮아. (시장에서는 SK텔레콤이 인수하는 게 좋다는 얘기도 있던데.) 대기업 아니면 어렵다보니 그런 얘기가 나오는 거겠지. 구성원들이 행복할 수 있다면 누구든 괜찮아.”

▷언젠가 팬택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나?

“사임 밝히고 가방 챙겨서 혼자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어. 뒤돌아보지 않았어. 차 속에서 다짐했지. ‘내가 죽어도 이 동네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팬택 창업 이후 가장 후회스러운 일은.

“나는 돈이 있을 때 회사 밖으로 나가는 걸 아깝게 생각했어. 회사를 키워야 하잖아. 난 회사가 어려워질 땐 주저없이 내 돈을 집어넣었어. 분한 것은 밑천이 부족해서 끝까지 싸워보지 못한 거야. 밑천만 더 있으면 목숨 걸고 사생결단을 했을 거야. 끝장을 봤을거야.”

▷특유의 보스 기질 때문에 정치를 할 거란 얘기도 있던데.


“난 안 해. 절대로 그런 것은 안 해. 일관된 모습으로 살고 싶어. 새로운 사업을 하면서 새로운 사람도 필요하겠지만 우리 구성원들이 원한다면 끌어들이면서 하고 싶어. 나는 기업인이고 늘 함께했던 구성원들이랑 같이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정치 얘기는 말이 안 돼. (안철수 씨도 하는데요 뭘.) 내가 철수냐?(웃음)”

▷어떤 비즈니스를 하려고 하는가?

“아직 모르겠어. 젊었을 때는 멋모르고 했는데…. 내가 도전적이잖아. 열심히 하고, 좋은 네트워크도 가지고 있고. 지금 무엇을 한다고 쓰면 오보야.”

▷무엇을 기반으로 사업을 할 셈인가?

“내가 바보냐? 나 박병엽이야. (다시 디지털 기기 제조업을 할 텐가?) 그게 사람이 할 짓이냐? 한국에선 미친놈이나 제조업 하는 거야. 내가 총대 메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한 거야. 제조업이든 뭐든 돈 되면 하는 거지 뭐.”

▷건강이 많이 안 좋다고 하던데.

“잔병이 너무 많아. 스트레스 때문이 아닌가 해. 스트레스 받잖아? 그러면 다음날 아침에 설사를 대여섯 번 한다. (요즘엔 갑상샘이 안 좋다던데.) 이것도 스트레스 때문이래. 의사가 푹 쉬라고 그래. 당분간 푹 쉴 생각이야.”

김광현/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

■ 박병엽은 누구 4000만원 갖고 삐삐 사업…휴대폰으로 영역 넓혀 세계 7위로

1962년 전북 정읍 출생. 양조장집 아들로 태어나 유년시절을 유복하게 보냈으나 형의 투병과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세가 기울어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했다. 서울 중동고를 거쳐 호서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1987년에는 서울 구로공단에 있는 맥슨전자에 입사해 무선전화기 판매 일을 했다. 직속 상사는 나중에 경쟁사 텔슨전자를 설립한 김동연 회장(당시 과장)이었다.

1991년 10평짜리 아파트를 팔아 마련한 4000만원으로 무선호출기(삐삐) 업체 팬택을 설립했고, 1997년 휴대폰으로 영역을 넓혔다. 이어 2001년 현대큐리텔, 2005년 SK텔레텍(스카이)을 인수해 팬택을 세계 7위 폰 브랜드로 키웠다.

2007년에는 회사가 워크아웃에 들어가자 4000억원대 보유 주식을 내놓고 정상화에 진력해 2011년 워크아웃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다시 경영이 악화되자 최근 800명 감원을 포함한 자구책을 내놓고 자신도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