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한국 유입 외국자금…'삶아진 개구리 신드롬' 논쟁
미국 중앙은행(Fed)의 출구전략 추진 우려로 신흥국들이 또다시 대규모 자금 이탈에 시달리고 있다. 일부 신흥국은 ‘낙인 효과’까지 겹쳐 충격이 의외로 크다. 이 여파로 외국 자금에 대한 규제 논의가 급진전되고 있다. 특히 ‘경기순응성’이 강한 캐리 자금이나 핫머니에 대한 규제 방안이 신흥국 사이에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경기순응성이란 금융 시스템이 경기 변동을 증폭시킴으로써 금융 불안을 초래하는 금융과 실물 간의 상호작용 메커니즘을 말한다. 경기 상승기에는 자산가격 상승, 위험 선호도 증가 등으로 은행 대출이 늘면서 잠재적인 금융 부실이 확대된다. 반면 경기 하강기에는 실물 활동 위축, 자산가치 하락, 위험 회피 성향으로 은행 대출이 급감하면서 금융 부실이 가시화된다.

경기순응성은 국제간 자본 흐름에서도 나타난다. 이 때문에 선진국 자본의 유출입이 신흥국의 경기 변동을 증폭시키는 현상이 발생한다. 급격한 자본 유입은 신흥국의 통화 팽창, 자산가격 상승 등 부작용을 초래한다. 갑작스레 자본 유출로 돌변하면 주가 급락, 환율 급등 등 거시경제의 변동성이 증폭되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신흥국 자본 흐름에 관한 연구를 종합해 보면 대부분 국가에서 자본 자유화 이후 자본 유출입의 변동성이 증가하고 순자본 유입의 경기순응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금리 차와 환차익을 겨냥한 캐리 자금의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경기순응성이 뚜렷해지는 점이 눈에 띈다.

경기순응적 외국 자금 유입과 관련해 미국 코넬대의 개구리 실험이 신흥국에 교훈이 될 만하다. 첫 비커에는 서식에 적합한 섭씨 15도에 개구리를 넣어 온도를 서서히 올리고, 다른 비커엔 처음부터 섭씨 45도에 바로 개구리를 집어넣었다. 예상과 달리 첫 비커에 넣었던 개구리가 죽었다고 한다.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면 더 큰 화를 당한다는 ‘삶아진 개구리 신드롬(boiled frog syndrome)’이다.

출구전략 추진을 전후해 자금 흐름이 중시되는 상황에서 한국은 적정수준 이상의 외환 보유,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 상대적으로 건전한 재정수지 등으로 외국인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주가가 상승하고 기대까지 겹치면서 ‘신흥국과는 다르다’는 주장이 여러 목적으로 자주 활용되고 있다. 이제는 마치 한국 경제가 문제가 없는 것처럼 인식된다.

하지만 최근 한국에 들어오는 외국 자금은 이미 다른 신흥국에 투자됐던 캐리 자금 성격이 짙다. 그것도 삼성전자 등 특정 기업에만 투자되면서 주가가 오르고 있다. 해외 시각도 그렇다. 연일 좋은 평가가 나오고 있으나 그에 상응하는 기초 여건을 마련해 놓지 않으면 외자 유입이 거품 발생을 촉진할 가능성이 높다.

베리 아이켄그린 미국 버클리대 교수가 주장한 ‘안전통화 저주’에 걸릴 소지를 경계해야 한다. 시장 위험, 신용 위험, 유동성 위험으로 평가한 원화 안전성이 최근 갑자기 높아졌기 때문이다. 다른 신흥국 통화 가치는 떨어지는데 원화 가치만 과도하게 절상되면 경쟁력이 크게 악화될 수 있다.

공식 임명 절차가 남아 있긴 하지만 차기 Fed 의장으로 로렌스 서머스가 내정됐다. 한마디로 서머스는 ‘강한 미국·강한 달러’를 지향한다. 거품이 끼거나 통화 가치가 과도하게 절상된다면 외국 자금이 들어오는 한국보다 일찍 매를 맞고 있는 인도와 인도네시아가 나을 수 있다는 얘기다.

현 시점에서 외국 자금이 유입된다고 해서 마냥 좋아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은 1%포인트 이상의 ‘디플레 갭’이 발생할 만큼 완전하지 못하다. 정치권에선 각종 현안을 놓고 당리당략 싸움을 벌이고 있어 국민들은 혐오감이 들 정도다. 하루빨리 경기가 회복될 수 있도록 국내 현안들이 정리되고 모든 경제주체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

국내로 들어오는 외자에 대한 대처 방안은 종전까진 △유입 외자를 사들이는 태화 개입 △유입 외자를 사들이되 풀리는 국내 여신을 흡수하는 불태화 개입 등이 일반적이었다. 이제는 ‘영구적 불태화 개입(PSI)’ 방안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국부펀드 등을 통해 국내에 유입된 외자 규모에 상응하는 해외 자산을 사들여 통화 가치의 균형을 맞추는 방안인다.

국내 금융사에 대해서도 국제결제은행 바젤위원회(FSB)가 경기순응성을 완화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의무화시킨 △자본금 규제 △대손충당금 적립 △레버리지 및 시가평가 규제 등도 점검해 놓아야 한다. 특히 자본금 규제와 관련해서는 최저자기자본비율 이상의 완충 자본을 적립하고 스트레스테스트를 실시해 놓아야 한다.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한국 유입 외국자금…'삶아진 개구리 신드롬' 논쟁
이런 노력이 어우러져야 한국으로 들어오는 외국 자금을 반길 수 있다.

지금 가장 경계해야 할 적은 우리의 능력과 과제에 대한 사전점검 없이 ‘이번에는 다르다’며 영업 차원에서 연일 외쳐대는 일부 금융사와 금융인이다. 한국 경제가 ‘삶아진 개구리 신드롬’에 걸릴 가능성을 높일 수 있어서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