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유럽의 풍경을 감싸안은 아름다운 도시
쪽빛 아드리아해(海) 위로 솟은 절벽 위에는 붉은 지붕이 촘촘히 보석처럼 박혀 있다. 해안가 절벽 위로는 오랜 세월 구시가지를 지켜온 성곽이 묵묵히 서 있다. 해가 뉘엿거릴 즈음 도시 가득한 건물 외벽은 황금빛으로 물든다.

지붕에서 반사된 붉은빛이 모든 것을 위로하는 듯, 구시가지를 포근히 덮는다. 쪽빛 바다에 내려앉은 태양이 조색(調色)한 수백 가지 아름다운 빛으로 물들어 가면 수면 위로 반영된 성벽과 옛 시가지의 모습은 물결을 따라 일렁인다.

○유럽인들이 선망하는 휴양지 두브로브니크

가장 좋았던 여행지가 어디냐는 질문에 언제나 제일 먼저 생각나는 곳, 바로 두브로브니크다. 우리에게 낯선 이 도시에 대해 대략 알아보자면 이렇다. 두브로브니크는 크로아티아의 남쪽 달마티아 지역에 있다. 흰 바탕에 얼룩점이 매력인 개 달마티안(달마시안)의 고향 달마티아 지역이다. 서기 7세기에 형성된 두브로브니크는 지중해성 온난한 기후에서 자란 다양한 농작물, 아드리해에서 난 각종 해산물과 소금을 매개로 베네치아와 경쟁할 만큼 활발한 해상무역 도시로 번성했다. 현재까지 보존된, 도시 전체의 크고 작은 길 위로 포장된 대리석이 과거의 영광을 말해준다. 도시를 감싸 안은 두터운 성벽이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된 것은 15세기 전후다.

절벽 위로 2㎞에 걸쳐 웅장하고 견고하게 지어진 성벽은 이슬람의 오스만튀르크에 맞서 유럽의 문화를 지켜낸 유럽 문화의 방패 역할을 했다. 무엇 하나 부족할 것 없던 이 아름다운 도시는 5000여명의 사상자를 낸 1667년 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다행히 성벽은 무사했지만 시간의 흐름을 따라 다양한 양식으로 지어진 수많은 건물이 무너졌다. 그리고 파괴된 대부분의 건물은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됐다.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두브로브니크는 유럽인들이 선망하는 최고의 휴양지로 떠올랐지만 1991년 크로아티아가 유고슬라비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뒤 반대파인 유고연방에 무차별 공습을 받았다. 아름다운 문화유산의 도시 두브로브니크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시기에 도시 전체의 3분의 1 이상이 파괴됐다.

붉은 지붕 위로 숭숭 뚫린 구멍들을 매운 흔적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당시의 참담함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공습 당시 유럽의 지성인들이 두브로브니크로 달려가 인간 사슬을 시도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전쟁이 끝난 후 두브로브니크는 유네스코의 지원 아래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됐다.

○구시가지 풍경의 고풍스런 향기

밤의 구시가지 풍경. 오래된 대리석 바닥이 거울처럼 시가지 풍경을 반영한다.
밤의 구시가지 풍경. 오래된 대리석 바닥이 거울처럼 시가지 풍경을 반영한다.
플로체 게이트는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의 시작점이다.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시간의 흐름은 느려진다. 마음을 느긋하게 먹고 천천히 산책하며 구석구석 둘러보는 것이 이곳을 여행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플로체 게이트를 따라 시원하게 뻗은 대리석 도로는 오랜 세월 사람들의 발길에 닳고닳아 반질반질 윤이 난다. 이 길을 쭉 따라가면 세인트 루카 게이트라고 불리는 동쪽의 필레 게이트까지 연결되지만 건물 사이사이로 난 좁은 골목과 골목을 따라 늘어선 아기자기한 상점들을 구경하느라 앞만 보고 반듯하게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손재주 좋은 두브로브니크 사람들이 정성껏 만든 핸드메이드 소품과 화려한 그림들이 여행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건물 사이사이 골목의 일상적 풍경.
건물 사이사이 골목의 일상적 풍경.
이것저것 구경하느라 조금 지쳤다면 골목 구석구석 숨어있는 소담한 노천카페와 레스토랑 중 마음에 드는 곳을 골라 잠깐 쉬어가는 것도 좋겠다. 잠시 쉬다 보면 골목 끝 가파른 계단을 따라 시가지로 내려오는 성곽 주민들과 만난다. 그들의 삶이 궁금하다면 골목 끝 계단을 따라 올라가 보자. 건물 사이사이로 알록달록한 빨래들이 예쁘게 널려 있고 가족을 위해 식사를 준비하는 어머니의 정성 가득한 음식 냄새가 공기를 타고 퍼져나간다. 삼삼오오 모여 공놀이에 열중하는 아이들에게 말을 걸어도 좋고, 찬거리를 사서 가파른 계단을 힘겹게 오르는 할머니를 도와드리는 것도 즐겁다. 간간이 창문을 활짝 열고 무언가에 열중하는 사람들과 눈길이 마주치는 순간도 민망하지 않다. 대개는 여행자를 향해 활짝 웃어주기 때문이다.

중세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풍경을 배경으로 피어나는 소소한 일상의 향기에 긴장됐던 마음이 이완됐다면, 이젠 본격적으로 구시가지를 둘러볼 차례다. 먼저 방문한 곳은 프란체스카 수도원이다. 수도원 외벽에 조그맣게 튀어나온 돌 위에 서서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모두가 발 디딜 틈 없는 좁은 돌 위에서 소원을 빌기 위해 여념이 없다. 이곳이 유명한 또 다른 이유는 유럽에서 가장 처음 문을 연 약국이 현재까지 영업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월의 향기를 켜켜이 머금은 약병에서 발산되는 오래된 향기가 고풍스러운 느낌을 더한다.

수도원 바로 앞에는 원형의 돌기둥에 조각된 아름다운 조각상 입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는 오노포리오 분수가 있다. 도시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1438년에 만들어진 이 분수는 현재 두브로브니크의 명소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밖에도 스폰자 궁전, 두브로브니크를 수호하는 성인인 블라이세를 기리는 성 블라이세 성당, 렉터 궁전, 이슬람으로부터 기독교를 지켜낸 영웅기사의 동상인 ‘롤랑의 기둥’, 대성당 등 역사적 의미를 가진 고색창연한 건물들이 조화롭게 늘어서 아름다운 중세도시의 매력을 더한다. 렉터 궁정과 대성당을 지나니 넓은 광장이 나온다. 군둘리치 광장이다. 이곳에서는 매일 오전 7시에 신선한 식재료와 각종 수공예품을 파는 장이 선다. 두브로브니크에서 아침을 일찍 시작해야 하는 충분한 이유다.

○푸른 빛의 낮과 아름다운 석양이 있는 밤

성곽 위로 올라가기에 가장 좋은 시간은 일몰 무렵이다. 해가 지면 성곽 출입을 금지하기 때문에 2㎞ 길이의 성곽 위를 천천히 둘러보다 석양이 질 때쯤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와 아드리아해를 한눈에 담고 바로 내려올 수 있도록 시간을 안배해야 한다. 플로체 게이트 입구를 통해 성벽에 오르자 폭 2m가량의 돌길이 이어졌다. 성벽을 쌓은 돌, 길 위로 깔린 돌 하나하나가 모여 500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두브로브니크를 지켜왔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왠지 모르게 엄숙해진다. 돌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할 때마다 구시가지 삶의 풍경들은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전쟁을 이겨낸 빛바랜 붉은 기와지붕과 새롭게 보수된 붉은 기와지붕 사이사이로 바람에 흩날리는 빨래, 누군가의 옥상에서 자라는 갖가지 식물들, 어디선가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 등과 같은 삶의 풍경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덧 구시가지 플라카 거리의 전경이 펼쳐진다. 또 한참을 걷다 보면 망망한 아드리아해 사이로 떠 있는 섬들이 눈에 든다. 아드리아해를 유랑하다 섬을 지나 계류장으로 돌아오는 요트의 흰 돛이 붉은빛으로 물들쯤이면, 어느덧 이곳의 모든 풍경은 마치 마술에 걸린 듯 아름다운 빛을 발한다. 눈앞에 펼쳐진 이 풍경 하나만으로도 두브로브니크를 여행해야 하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낮에는 생에 가장 짙은 푸른빛을 마주할 수 있고, 일몰에는 가장 아름다운 석양을 감상할 수 있는 곳, 바로 두브로브니크다.

◆여행팁 직항없어 유럽 도시 경유…영어로 의사소통 자유로워

오래된 유럽의 풍경을 감싸안은 아름다운 도시
우리나라에서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까지 가는 직항은 없다. 루푸트한자는 프랑크푸르트, 핀에어는 헬싱키에서 두브로브니크 연결편을 운항한다.

크로아티아의 다른 도시들을 두루 둘러보고 종착지로 두브로브니크를 정했다면 주로 크로아티아 제2의 도시인 스플릿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차로 이동하는 방법이 일반적이다. 이 경우 이동 중 도로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영토로 귀속돼 있기 때문에 국경을 지나가는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스플릿에서 두브로브니크까지는 4시간 정도 걸린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자그레브를 거쳐 스플릿까지 열차 편을 이용하거나 이탈리아 바리에서 페리를 이용해 바다를 건너는 방법도 있다. 크로아티아어를 사용하며 영어 소통이 자유로운 편이다.

화폐 단위는 쿠나(1쿠나=약 200원)를 사용한다. 한국에서는 환전할 수 없고 현지에서 환전해야 한다.

두브로브니크(크로아티아)= 문유선 여행작가 hellomygrap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