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우리금융·산업은행 실패, 징비록 써야
징비록은 임진왜란을 온몸으로 겪은 서애 유성룡이 눈물로 쓴 회고록이다. 징비(懲毖)는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함’을 뜻하는 시경(詩經)의 문구인데, 왜국의 침입에 미리 대비하지 못한 과오와 초기 전투부터 실패한 전략적 실수에 대해 후일 경계로 삼기 위해 쓴 책이다.

우리금융과 산업은행이 돌아가며 국가재정을 축내고 있다. 뭉쳐 놓고 판을 키웠던 우리금융은 찢어 나눠 팔기로 급선회했고, 삼각분할을 마무리한 산업은행은 다시 합친단다. 그동안 퍼부었던 수천억원에 이르는 부대비용을 몽땅 날리게 됐다. 책임 논쟁도 가관이다. 강력한 이너서클 모피아는 꼭꼭 숨고 곽승준·이창용 등 교수 아마추어만 속죄양으로 떠오른다.

금융 부실에 대한 공적자금은 김대중 정부에서 64조원을 1차로 투입했다. 그러나 대우사태 여파로 상업은행 한일은행 평화은행 경남은행 광주은행 종금사 등이 다시 위기에 빠졌다. 추가 공적자금이 절박한 상황이었으나 정치 공세를 피할 요량으로 금융지주회사로 땜질하려는 꼼수가 등장했다. 금융노조가 거세게 반발하자 2차 공적자금 40조원이 새로 투입됐다. 금융지주회사로 묶는 작업은 그대로 진행됐는데 매각을 쉽게 하려면 매물 단위를 작게 나눠야 한다는 자명한 이치를 간과한 실수였다.

지주회사 우산 아래에 들어가면 망해도 다시 부활한다. 평화은행이 2차 공적자금을 퍼붓고도 다시 부실에 빠지자 카드사로 변신하는 꼼수가 등장했다. 계열은행 카드부문을 모두 인계받고 상호도 우리카드로 개명했다. 그러나 출범 직후 카드대란이 발발했고 다시 부실 덩어리로 전락한 과거 평화은행이었던 우리카드는 우리은행이 껴안아 합병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KB국민카드 분사가 인가되자 우리금융도 계열은행 카드부문을 다시 징발해 우리카드를 분사했다. LG카드 부실책임으로 LG그룹이 내놓은 LG증권도 우리금융이 인수해 우리투자증권으로 개명했다. 스스로가 매물이었던 우리금융이 사들인 우리투자증권은 이번 우리금융 분할매각에서 첫 번째 매물로 또다시 ‘매물의 길’을 걷게 됐다.

이명박 정부 초기 산업은행에서 왜 ‘총재’라는 호칭을 쓰는지를 대통령이 직접 따지면서 민영화 태풍이 불기 시작했다. 기존 한국산업은행을 정책금융공사 산은지주 산업은행으로 삼각분할해 민영화를 추진했다. 그러나 핵심 추진세력이던 강만수 씨가 산은지주 회장에 취임하면서 이상기류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민영화 대상인 산은지주가 우리금융을 인수하겠다고 나섰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는 해프닝도 생겼다. 민영화를 전제로 소매금융을 확충하고 높은 이자로 예금유치에도 나섰다. 기획재정부는 다른 은행과의 경쟁에서 자율성을 높여야 한다며 공공기관에서 해제하는 특별조치도 발표했다. 그러나 발표문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강 회장 주도의 ‘민영화 불가론’이 제기됐다.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여야가 한목소리로 ‘민영화 포기’를 질타했다. 그러나 총선과 대선이 다가오자 민영화가 공기업 노조의 반대투쟁 대상임을 감지한 정치권이 함구로 돌아서면서 민영화는 정치권 금기어가 됐다.

산업은행은 공적자금 대신 정부가 7조원이 넘는 공기업 주식 현물출자로 살렸다. ‘국고 삼킨 하마’인 우리금융과 산업은행에 대한 노무현·이명박 정부의 혼선은 ‘잃어버린 10년’을 넘어 ‘난장판 10년’이었다. 정부의 뜻에 휘둘린 자금운용으로 막대한 부실채권이 쌓였고 시장 평가도 바닥을 헤맸다. 부실에 빠진 STX그룹의 13조원 여신 중에는 산업은행과 정책금융공사 채권 4조원을 포함해 수출입은행 NH농협 우리은행 등 금융공기업 채권이 11조원이나 된다. 이런 금융공기업 난맥상은 세계경제포럼(WEF) 경제평가에서 ‘금융시장 성숙도’가 분야별 순위에서 최하위인 81등으로 추락하는 이유가 됐다.

우리금융과 산업은행 모두 정부 주식 매각을 통한 민영화가 정도(正道)다. 정권 초기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 정책금융을 복잡하게 섞어 놓으면 민영화가 어렵다. 삼각분할 방향이 틀렸다면 신속히 재조정해야 한다. 우리금융과 산업은행 실패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담은 징비록은 반드시 기록돼야 한다.

이만우 < 고려대 교수·경영학 leemm@kore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