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하고 있는 뮤지컬 ‘엘리자벳’.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하고 있는 뮤지컬 ‘엘리자벳’.
지난해 한국어로 공연된 뮤지컬 중 최고 흥행작이자 화제작은 ‘엘리자벳’이었다. 오스트리아 뮤지컬계 황금 콤비인 극작가 미하일 쿤체와 작곡가 실베스타 르베이가 만든 이 작품은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3개월간 진행된 한국 초연에서 15만명이 관람했고, 전 회 기립박수가 터질 만큼 관객의 호응이 높았다.

예술의전당이 순수 예술계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오페라극장에 뮤지컬을 올릴 수 있는 ‘여름 비수기’에 이 작품을 선택한 것도 초연에서 검증된 흥행성과 작품성이 크게 작용했다. 지난달 26일 막이 오른 재공연에서도 객석의 반응은 연일 뜨겁다. 첫 장면부터 시작된 관객의 환호와 탄성, 박수는 공연 내내 계속되고 커튼콜에서는 여지없이 기립박수로 이어진다.

이 작품은 19세기 후반 격동의 시대를 살아간 오스트리아 제국 마지막 황후이자 비운의 여인인 엘리자벳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다룬다. 국내엔 익숙하지 않은 시대적 배경과 인물의 삶을 그린 작품에 한국 관객들이 매료되는 가장 큰 요인은 쿤체·르베이 콤비의 대본과 음악이다.

쿤체는 모순투성이인 엘리자벳의 삶을 죽음과 광기로 풀어낸다. 극은 엘리자벳을 암살한 루케니의 시선으로 펼쳐진다. 루케니는 “엘리자벳이 죽음과 사랑에 빠졌고, 죽음을 원했기 때문에 그녀를 암살했다”고 주장하며 죽음을 의인화한 토드를 등장시킨다. 쿤체는 토드와 루케니란 매력적인 캐릭터를 창조하고 현실과 판타지를 섞는 기발한 상상력으로 엘리자벳의 번민과 갈등, 광기를 설득력 있고 호소력 있게 그려낸다.

르베이의 음악은 쿤체의 대본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록과 클래식 등 다양한 장르를 동원해 캐릭터와 장면에 맞게 배치하고, 서정적이면서 감각적인 선율을 되풀이하며 관객에게 쉽게 잊을 수 없는 인상을 남기는 음악적 설계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퍼포먼스에서는 몇몇 아쉬운 대목이 눈에 띈다. 일부 주역급 배우와 앙상블에서 가사 전달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토드 역을 맡은 가수 박효신은 배역에 딱 들어맞는 목소리와 가창을 들려주지만 발음에 좀 더 신경써야 한다. 극 중 화자인 루케니 역의 이지훈도 마찬가지다. 캐스팅에 따라 공연의 품질이 달라지면 곤란하다. 가뜩이나 화려한 볼거리가 넘치는 공연에 앙상블 배우들의 춤사위가 지나치게 많은 것도 문제다. 시각적으로 피곤하다.

옥주현과 김소현이 번갈아 출연하는 엘리자벳만큼은 캐스팅에 따른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모습과 감정을 각자 다른 색깔로 표출한다. 옥주현은 폭발적이고 넉넉한 성량과 가창력을 바탕으로 한 안정감 있는 연기를 펼치고, 김소현은 연령대와 곡의 성격에 맞게 달리 부르는 팔색조 창법으로 객석을 사로잡는다. 공연은 내달 7일까지, 6만~14만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