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 최태원 회장 선고 내달 13일 연기
9일로 예정됐던 최태원 SK 회장(사진)에 대한 항소심 선고가 다음달 13일로 연기됐다.

서울고법 형사4부(재판장 문용선 부장판사)는 “최 회장의 선고 기일을 다음달 13일 오후 2시로 연기했다”고 7일 발표했다. 재판부는 “백수십 권에 이르는 기록을 검토하고 판결문을 작성하기 위해 추가로 시간이 소요된다”고 연기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그러나 “김원홍의 체포와 이에 따른 피고인 최태원 변호인의 증인 신청과는 무관하다”며 최 회장 변호인이 요청한 변론 재개 여부에 대해 “재개 신청을 불허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항소심 재판부의 선고기일 연기는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다. 항소심에서 이 사건의 핵심 인물로 급부상한 김원홍 전 SK 고문이 잠적 2년여 만에 지난달 31일 대만에서 전격 체포됐기 때문이다. 최 회장은 항소심 공판에서 김씨가 자신을 속이고 계열사 돈을 빼돌렸다며 그를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했고, 문용선 재판장도 “김원홍이 사건을 주도·기획했다. 그의 됨됨이가 어떤가는 사건을 심리하는 데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김씨 심리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사건의 핵심 인물을 놔두고 재판을 종결할 경우 형사소송의 이념인 ‘실체적 진실 발견’에 소극적이었다는 비판을 재판부는 감수해야 한다. 게다가 재판부가 이례적으로 선고기일을 한 달 이상 미룬 점 등에 비춰 볼 때 김씨의 국내 송환 여부에 따라 재판부가 직권으로 변론을 재개하고 김씨를 증인으로 세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날 대만 수사당국에 따르면 김씨의 이민법 위반 사건이 대만 경찰에서 검찰로 공식 이첩됐다. 대만 검찰은 김씨의 대만 내 불법행위 여부에 대해 조사한 뒤 강제추방할지 결정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김씨의 국내 송환이 늦춰질 수도 있다. 대만 당국은 그러나 한국정부의 조기 송환 요청이 있었기 때문에 사법 절차를 최대한 단축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선고 연기에 대해 SK 측은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SK 관계자는 “일단 상황을 지켜보고 있으며 재판부의 결정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재판부가 변론 재개를 불허한 것은 김원홍 씨의 송환 일정이 구체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재판을 재개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일단 연기된 선고 기일까지 기존 재판 기록을 재검토하면서 재판의 완성도를 높이는 동시에 김씨 심문을 위한 전략을 짜기 위한 목적도 깔려 있는 것으로 법조계 관계자는 해석했다.

김병일/배석준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