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자동차 해킹
2010년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차량 100여대가 급작스럽게 오작동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경찰이 조사해 보니 이 차들은 같은 판매업체에서 팔린 것으로 확인됐다. 범인은 이 판매업체에 근무했던 한 해커의 소행이었다. 그는 차량에 부착된 내비게이션과 원격 조종장치를 이용해 고객이 차량에 시동을 걸지 못하게 하거나 차량의 경적을 계속 울리도록 제어한 것이었다.

차량에 전자 무선 장치를 처음 도입한 것은 1986년 독일 부품기업 보쉬(Bosch)다. 보쉬는 자동차 무게를 감소시켜 연비(燃費)를 절감하고 배기가스 검출을 줄이기 위해 차량 부품들을 유선에서 무선으로 바꾸는 기술을 개발했던 것이다. 이후 전자 장치는 ‘바퀴달린 컴퓨터’로 부를 만큼 급속도로 발전했다. 인터넷과 연결돼 있는 차량이 전체의 80%를 넘는다는 통계도 있다.

하지만 해킹의 대두가 전장기술 발달에 걸림돌이 된다. 자동차 해킹은 이메일이나 컴퓨터 해킹과 달리 운전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이 우선 생각하는 해킹 경로는 내비게이션과 자동차 스테레오 시스템이다. 수시로 새로운 파일을 내려받는 내비게이션이나 디지털 음원 등에 바이러스를 심으면 스테레오가 작동하면서 해커들이 조종할 수 있게 되고 이 시스템과 연결돼 있는 자동차의 다른 부품도 조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고급차에 장착돼 있는 인증시스템이나 원격서비스를 통해서도 해킹이 가능한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로 두 명의 전문 해커가 미국 정부의 후원으로 포드차의 이스케이프와 도요타의 프리우스를 타고 자동차 해킹을 시연했다는 외신 보도다. 이 해커들은 뒷좌석에서 PC로 차량 시스템을 조작해 핸들을 꺾게 만들고 브레이크를 제어토록 했다. 결국 차량은 운전자의 통제를 받지 않은 채 그냥 풀숲으로 곤두박질쳤다고 한다. 이들 해커는 경적 울리기와 배터리 방전시키기, 연료 게이지 떨어뜨리기, 가속페달·브레이크 조작까지 35개의 전자제어 장치를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었다고 한다.

구글이 추진하는 무인자동차 개발에도 이 같은 해킹이 우려되고 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해킹이 앞으로 자동차 산업에 중대 화두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비단 자동차만이 아니다. 항공기도 해킹이 가능한 세상이다. 지난 4월에는 영국 보안전문가가 스마트폰으로 항공기 조종석 전등을 점멸하거나 좌석 위 산소 마스크를 내리는 것은 물론 모의비행에서 항공기 진로를 변경하고 심지어 충돌시키는 시연을 한 적도 있다. 편의성이 커질수록 리스크도 커지는 게 디지털 사회다. 그런데 핸들까지 내가 아닌 누군가의 조종을 받는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