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여행사가 변해야 관광이 산다
휴가철을 맞아 일부 소셜 커머스 업체와 여행사가 항공료와 여행상품에 붙이는 유류할증료를 최대 75%나 뻥튀기하는 꼼수를 부려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소비자에게 제시하는 여행상품가는 최저가로 두고, 부풀린 유류할증료를 붙여 보전하는 편법이다. 유류할증료는 국토교통부와 항공사가 정한 것이기에 항공사, 여행사 간 차이가 없을 것이라 믿는 소비자들의 뒤통수를 치며 부당이익을 취한 셈이다. 소셜 커머스와 오픈마켓에서 판매하고 있는 조사 대상기업 25개 가운데 80%가 이 같은 불공정 거래를 일삼았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이런 부적절하고도 부조리한 상황은 유류할증료 추가 징수뿐만 아니다. 1980년대 일제 코끼리밥통 사건부터 외환위기 시절을 지나 최근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까지 산전수전 다 겪으며 제법 큰 여행사 대표 자리에 앉은 지도 20년 가까이 된다. 하지만 아직도 가족이나 지인들이 항공권을 사겠다고 전화를 걸어오면 덜컥 겁부터 난다. 여행사에 다니는 친구로서 혜택을 주겠다며 원가로 항공요금을 제시하곤 하는데 어쩐 일인지 항공권 구매까지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잘나간다는 여행사 대표가 제시한 원가라는 게 더 비싸기 일쑤여서 졸지에 돈만 아는 매정한 놈으로 낙인 찍히는 현실이 야속하기만 하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당장의 매출만 늘리고, 그렇게 늘린 돈을 자본시장에서 뻥튀기하려는 업체들이 항공료를 원가 이하로 덤핑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여행상품은 무조건 원가 이하로 싸게 보이도록 만든 뒤 부족한 비용은 현지에서 강제 쇼핑과 선택관광으로 메워 이익을 취하는 여행사가 난립해 있다. 심지어 여행업 등록도 하지 않고 무면허로 고객을 유치해 탈법과 탈세를 자행하는 업체도 늘어나고 있다. 결국 여행업 생태계가 꼼수와 부적절한 기업 행동으로 인해 파괴되고 있다. 산업생태계도 자연생태계와 마찬가지로 한번 파괴되면 회복이 어렵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되기 마련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셤의 법칙이 여행업에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규칙을 지키는 여행사들이 오히려 피해를 보고, 정직한 상품으로 고객에게 다가가려는 여행사들은 가격이 비싸 사기꾼 소리를 듣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는 여행업협회 추산 약 1만5000개의 여행사가 있다. 여행 선진국인 미국과 비교하면 인구에 비해 여행사가 세 배 이상 많다. 이처럼 여행사가 과잉공급됐기에 가격 덤핑이 일반화되는 기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여행사들은 생존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유류할증료 초과징수, 여행 중 무리한 쇼핑과 선택관광 강요 등의 불공정 행위가 무차별적으로 혹은 암암리에 진행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런 행태를 서슴지 않는 여행사에 고객가치, 기업가치, 산업가치란 말은 사치품에 지나지 않는다.

세상은 고객중심, 을(乙) 중심으로 변하고 새로운 기업, 새로운 유통방법, 새로운 마케팅 수단이 자꾸 등장하는데 여행서비스와 여행상품의 질은 거꾸로 가고 있다. 여행상품의 중심에 고객이 있다는 것을 간과하면 여행사 모두가 공멸한다.

‘여행’이란 단순한 ‘여가’ 개념을 넘어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교육의 장이요, ‘웰빙’을 지나 ‘힐링’에 도달하는 문화적 도구이며 방법이다. 여행사의 자정 노력과 협회의 견제장치, 그와 더불어 손톱 밑 가시를 빼주는 정부의 꼼꼼한 제도개선을 기대한다. 국민들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해야 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자 의무인 것처럼 안전하고 우수한 여행상품을 제공하도록 업계를 지도 감독해야 하는 것 역시 정부의 역할이다. 정부와 여행업협회에서는 국내외 여행상품을 사전 심사해 품질을 인증해 주는 우수여행상품인증제와 같은 좋은 제도를 생색내기용으로만 운영하지 말고 확대 발전시켜야 한다. 또 태국의 관광경찰처럼 세계의 좋은 제도를 더욱 적극 도입해 한류 바람을 타고 늘고 있는 외국관광객 유치에 탄력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진석 < 내일투어 대표이사, 관광경영학회 부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