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운 좋은(?) 거래소와 코스콤
“거래소나 코스콤이나 억세게 운이 좋았습니다. 정상적인 정규장 때 거래가 중단됐다면 파장은 상상을 초월했을 겁니다.”

지난 15일과 16일 한국거래소에서 발생한 두 건의 전산사고를 바라보는 시장 참여자들의 반응이다. 16일 새벽 거래소 사옥 정전사고로 조기 종료된 야간선물시장은 하루 평균 거래대금이 2조원 안팎으로 정규장의 10% 수준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올 들어 지수 변동성이 떨어지면서 거래량이 줄어드는 추세다.

한 증권회사 선물 담당 애널리스트는 “야간선물 거래주체의 70%는 개인인데다 거래 자체가 중단된 것이어서 금전적인 피해는 사실상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고 이틀째인 17일까지 주요 증권사에 접수된 피해 사례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주요 데이터 전송이 지연된 지난 15일에도 선물·옵션 등 파생상품 가격 산정의 기준이 되는 코스피200지수는 정상적으로 표시됐다. 코스피200지수마저 시세가 늦게 제공됐더라면 거래 규모가 큰 외국인과 국내 기관을 중심으로 거액의 손실이 발생했을 가능성도 있다. 거래소와 코스콤 내부에서도 이 같은 사실에 ‘천만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분위기다.

공교롭게도 한국 증시 역사상 초유의 대형 전산 사고는 거래소 이사장의 공석 중에 일어났다. 공기업 기관장 선임이 늦어지면서 근무 기강이 해이해진 데 따른 ‘인재(人災)’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거래소는 김봉수 전 이사장이 지난달 사임한 이후 한 달 넘게 직무대행체제가 이어지고 있다.

코스콤 역시 우주하 대표가 아직 업무를 보고 있지만 지난달 3일 대표이사직에서 자진 사임한 상태다. 거래소 전산설비 운영을 맡고 있는 코스콤 대표의 전문성이 한층 중요해졌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코스콤 사장은 그동안 대부분 정보기술(IT)과 관계가 없는 정부 관료 출신의 낙하산 인사로 채워졌다. 기획재정부 세제실장 출신인 이종규 전 대표(2006년)를 시작으로 7년 새 네 명의 사장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나는 내홍까지 겪었다.

거래소와 코스콤 전산 사고는 노후설비 하나가 순식간에 한국 증시의 ‘심장’을 멈춰서게 하고 자본거래에서 가장 중요한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줬다. 감독당국은 원인을 철저히 조사해 투자자들이 안심할 수 있는 강도 높은 처방을 내놔야 한다.

강지연 증권부 기자 sere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