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상이 변했다. 2012년 대선 이후 한국사회가 변했다. 이제 삼성도 변해야 한다. 더 이상 한국사회 '밖'의 예외적인 존재가 아니라 사회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재벌 저격수'라 불리는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무역학과 교수)이 17일 삼성을 찾아 경제민주화와 관련해 삼성이 나가야 할 방향에 대해 조언했다.

김 교수가 삼성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그룹 미래전략실에서 두 달 여 전에 그를 수요사장단회의 강사로 초청했기 때문이다.

재계에서는 삼성이 김 교수를 초대한 것이나, 경제민주화를 주제로 강연을 들은 것 모두 파격적이라고 보고 있다.

김 교수는 최지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과 삼성 주요 계열사 사장들을 앞에 놓고 한 이번 강연에서 "세상이 변한만큼 삼성도 변해야 한다"며 "이재용 부회장의 리더십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강연은 김 교수가 생각하는 '경제민주화란 무엇인가'와 '박근혜 대통령이 추진하는 경제민주화의 한계' '삼성은 경제민주화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등으로 이어졌다.

그는 "일부에서 경제민주화의 의미를 지나치게 과잉규정하려고 하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다"며 "사회가 정한 룰 안에 들어오는 사람에게는 보상을 주고, 그것을 일탈한 사람에게는 패널티(벌)를 주는 방법론적인 원칙이 바로 경제민주화"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런 관점에서 볼때 경제민주화의 과제로는 재벌개혁과 양극화 해소를 꼽을 수 있다"며 "재벌개혁이 경제민주화의 출발점이고 양극화 문제 해소는 경제민주화 본령"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추진하는 경제민주화의 한계점도 지적했다. 김 교수는 "대통령이 생각하는 경제민주화는 귄위주의적 기초에 서 있다는 점에서 모순"이라며 "진보진영이 구조의 문제(출총제 부활, 순환출자 폐지 등)에만 집착한다면 박 대통령은 잘못된 행위를 제재하는 '행위의 문제'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김 교수는 박 대통령의 경제민주화가 그 자체로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은 변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처했다고 지적했다. 쉽게 말해 (재벌기업도) 불법행위를 하면 처벌받고 감옥에 가는 것으로 현실이 바뀌고 있다는 것.

강연의 말미는 이같은 환경 변화 속에서 삼성이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었다. 김 교수는 "나는 삼성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지만, 그 방법이 다를 뿐"이라고 정의한 뒤 "삼성이 그 놀라운 경영성과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에서 왜 명과 암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가 생각해보라"고 질문했다.

그는 "그 놀라운 경영성과 때문에 삼성은 자부심이 자만심으로 연결돼서 스스로를 '한국사회 밖'으로 인식했던 것"이라며 "사회가 변했기 때문에 삼성도 한국사회 안으로, 구성원의 하나로 들어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이를 위해서는 삼성의 리더십이 바뀌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 교수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세상 밖으로 나와 소통하고 평가받아야 한다는 것"이라며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을 들어야 평판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김 교수는 오늘 자신이 삼성에서 강연을 하게 된 것 자체가 이미 변화가 시작됐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삼성이 나를 초청할 정도로 변했다"며 "이런 변화가 다른 기업들에게 전파되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김 교수의 강연이 끝난 뒤 몇몇 사장들은 "기업의 입장도 이해해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교수는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을 거쳐 2006년부터 경제개혁연대 소장으로 활동하면서 재벌개혁 문제를 집중 거론하며 입법운동을 벌여왔다.

한경닷컴 권민경 기자 k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