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C "한국문화가 사고 단서될 수 있어"
FP "순종적 문화, 비행안전에 더 위험할 수도"


미국 언론이 아시아나 항공기의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 사고와 관련해 조종사 과실 가능성을 부각시킨데 이어 일부 매체에서는 한국 문화까지 사고 원인으로 거론했다.

경제전문방송인 CNBC 인터넷판은 9일(현지시간) '한국 문화가 아시아나 항공기 충돌 사고의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Korean Culture May Offer Clues in Asiana Crash) 제목의 기사에서 "조사관들이 한국문화라는 믿기 힘든 단서를 연구함으로써 조정실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 수 있다"고 보도했다.

CNBC는 "한국 항공산업의 안전이 기록상으로는 향상됐지만 조직 내 계급 문화를 지키려는 민족적 특성을 갖고 있다"면서 토머스 코칸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슬론 경영대학원 교수의 발언을 인용해 한국의 문화적 특성이 소통을 방해한다고 주장했다.

코칸 교수는 "한국 문화에는 연장자에 대한 존경과 권위주의라는 두 가지 특성이 있다"면서 "이 두 가지 요인이 결합하면 의사소통은 일방적이 되고 상향식 의사 전달은 많이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고 CNBC에 말했다.

CNBC는 또 한국어의 존칭에 대해 언급하면서 "상급자나 연장자에게 말할 때는 더 많은 단어와 완곡한 표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상급자나 연장자에게는 "물 마실래?"(Yo! You want water?)가 아니라 "날씨가 더운데 물 드시겠습니까?"(It's a warm day for a nice refreshment, no?)라고 물어봐야 한다고 예를 들었다.

한국의 나이·계급 서열주의 및 권위주의적 문화와 언어적 특성이 긴급한 상황에서 조종사들끼리의 효율적이고 빠른 의사소통을 방해해 사고가 발생했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미국의 외교전문매체 포린폴리시(FP)도 국가별 항공안전도가 문화적 차이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다.

포린폴리시는 이날 국가별 항공안전도가 경제력과 대체로 비례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를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일반적 이론은 문화적인 요인이고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문화에서 비행은 더 위험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문화에서는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직급이 낮은 승무원들이 아무래도 상급자인 조종사의 결정에 도전하거나 지원을 요청하는 것을 꺼리게 된다는 분석이다.

포린폴리시는 대표적인 사례로 1990년 뉴욕 JFK 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콜롬비아의 아비앙카항공 사고를 꼽았다.

당시 승객, 승무원 157명을 태운 아비앙카항공 여객기는 도착지인 뉴욕 상공에서 기상악화로 선회하던 중 연료가 다 떨어져 가는 상황에서도 공항 관제탑의 착륙 허가를 기다리느라 결국 추락했다.

포린폴리시는 그러나 "이번 아시아나항공 여객기 착륙 사고 당시에는 기수를 다시 올릴 것인가를 두고 내부에서 의견이 달랐다면서 순종적 문화와는 무관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1990년대 최악의 평가를 받았던 대한항공이 이른바 '조종석 문화'를 바꾸려고 노력을 기울었으며, 아시아나항공은 이번 사고가 나기 전까지는 가장 안전한 항공사로 꼽히는 등 한국 항공사는 최근 안전도에서 큰 발전을 이뤘다고 평가했다.

CNBC의 보도 등에 대해 한 항공업계 소식통은 "전혀 틀린 지적은 아니지만 항공안전에 문화적인 요인을 부각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다"면서 "오히려 일사불란한 대응이 안전에 기여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항공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조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문화적인 문제까지 거론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CNBC는 "이번 사고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조종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고 조종사들끼리 무슨 말을 했는지를 정확하게 알려면 수개월이 걸린다"고 전했다.

(워싱턴 뉴욕연합뉴스) 이승관 이상원 특파원 humane@yna.co.krleesa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