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주식시장을 포함한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올해 내에 양적완화 프로그램을 축소할 수 있다는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발언이 화근이 됐다.

양적완화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시장 분위기를 짓누르기 시작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날 버냉키 의장의 발언은 시장의 예상보다 더욱 구체적이라는 점에서 충격이 컸다는 분석이다.

양적완화를 일단 유지한다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성명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뉴욕증시는 버냉키 의장의 기자회견 직후 빠르게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미국 국채 금리와 달러화의 가치는 가파른 상승세를 탔다.

미국 등 주요국 중앙은행의 양적완화 축소가 가시권에 접어들면서 유동성 장세를 이어왔던 세계 금융시장에 일대 혼란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뉴욕증시 1% 이상 하락…미국 국채ㆍ달러화 급등
이날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전날보다 206.04포인트(1.35%) 떨어진 15,112.19에서 거래를 마쳤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22.88포인트(1.39%) 하락한 1,628.93을, 나스닥종합지수는 38.98포인트(1.12%) 내린 3,443.20을 각각 기록했다.

반면 버냉키 의장의 기자회견 이후 미국 국채와 달러화는 일제히 급등했다.

미국 동부 시간으로 오후 4시 현재 뉴욕채권시장에서 10년만기 국채가격은 전날보다 1-9/32포인트 급락했고, 가격과 반대로 움직이는 수익률은 15bp 급등한 연 2.334%를 기록했다.

10년물 국채수익률은 2012년 3월20일 이후 최고치를 경신한 것이다.

30년만기 국채가격은 전장보다 30/32포인트 하락했고, 수익률은 6bp 오른 3.404%를 보였다.

5년만기 국채수익률은 전날보다 18bp 급등한 1.242%를 나타냈다.

뉴욕 외환시장에서 달러화는 엔화에 대해 달러당 96.47엔을 기록해 전날 뉴욕 후장 가격인 95.32엔보다 1.15엔이나 올랐다.

유로화에 대해서도 유로당 1.3295달러에 움직여 전날 후장 가격인 1.3392달러보다 0.0097달러나 낮아졌다.

◇ 세계 각국 양적완화 출구전략 가시화
뉴욕증시는 앞서 이틀간은 상승세를 보였다.

연준이 양적완화 축소에 따른 충격을 막기 위해 이번 회의에서 양적완화 축소를 섣불리 결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물론 버냉키 의장이 불확실성을 줄이려고 양적완화 축소 여부와 시기 등을 언급할 것이라는 관측도 없지는 않았지만 이날 발언은 그런 예상을 다소 뛰어 넘었다.

버냉키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미국 경제가 예상대로 개선된다면 올해 말부터 양적완화를 축소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경제지표가 지속적으로 기대에 부응할 것을 전제로 "내년 상반기까지 양적완화 규모 축소를 지속해 중반에는 중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적완화 축소 가능성만 언급했던 기존 발언과 달리 '올해 하반기 규모 축소, 내년 중반 완전 종료'라는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한 셈이다.

미국 연준에 앞서 일본 중앙은행도 새로운 금융완화 조치를 하지 않기로 하면서 세계 중앙은행들이 부양 정책 축소에 나설 것이라는 투자자들의 우려를 키웠다.

일본은행은 지난 12일 통화정책 회의에서 양적완화를 유지하기로 했지만 시장이 기대했던 채권시장 안정화 대책은 내놓지 않았다.

현재로서는 더 이상의 부양책이 없다는 메시지를 준 것이다.

◇ 전문가 반응과 향후 전망은 엇갈려
버냉키 의장의 발언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에는 온도 차이가 있었다.

랜드콜트 캐피털의 토드 쉔버거는 "월가는 이날 연준이 발표한 것을 정확히 예상했다.

경제전망을 소폭 개선하고 공격적 통화정책을 지속할 것이란 발표가 그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헌팅톤 에셋매니지먼트의 랜디 베이트먼 최고투자책임자(CIO)는 "버냉키 의장이 긴축 문제에 대해 언급한 것에 놀랐다.

지난번에 그가 긴축에 대해 언급했을 때 시장은 상당한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라며 예상 밖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웰스파고 프라이빗뱅크의 조지 러스낵 전무는 "연준이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면서 "시장이 긴축 시작에 대비하게 하는 동시에 이런 긴축이 너무 극단적이고 시장에 지장을 주는 수준이 아니라는 점을 안심시켜야 하는데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향후 시장의 방향성에 대한 전망도 다소 엇갈렸다.

유동성 장세가 종료가 구체화된 부분에 방점을 찍은 의견이 있는 반면 시점의 문제였을 뿐 예고됐던 것이고 최근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시장에 상당 부분 반영됐다는 지적도 있다.

랜드콜트 캐피털의 토드 쉔버거는 "FOMC 성명은 최근의 잇단 양적완화 축소 가능성 언급에 '멀리건'을 준 것"이라며 "앞으로 시장은 양적완화 자체보다는 2015년까지 금리 인상이 없을 것이라는 부분을 더욱 중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내년 1월 임기가 끝나는 버냉키 의장의 교체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 새로운 불확실성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내놓는다.

(뉴욕연합뉴스) 정규득 특파원 wolf85@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