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특허괴물과 '14년 전쟁'  끝
SK하이닉스가 ‘특허괴물’ 미국 램버스와 벌인 지긋지긋한 14년 전쟁이 마침내 마무리됐다. SK하이닉스는 12일 램버스와 합의를 통해 모든 소송을 취하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으로 법정 다툼을 버텨온 끝에 당초 램버스가 요구한 금액의 절반도 안 주고 그들의 특허를 쓸 수 있게 됐다.

램버스는 다양한 방법으로 수집한 특허를 무기로 글로벌 기업에 무차별적 사용료를 요구하고, 필요하면 소송을 일삼는 전형적인 특허괴물로 통한다. 2000년대 들어 램버스 등 특허괴물의 등장은 한국 기업이 세계 특허 출원을 늘리는 등 특허소송에 대응을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

◆난타전 소송 끝에 판세를 뒤집다

램버스와의 특허전은 2000년 시작됐다. 1990년 설립된 반도체 설계 전문업체 램버스는 100여개 특허를 앞세워 2000년 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당시 현대전자), 미국 마이크론, 일본 히타치와 NEC(현 엘피다), 독일 인피니언 등 글로벌 메모리 D램 업계에 특허료를 내라고 전방위로 압박하기 시작했다. 요구한 돈은 한 해 매출의 4~5%에 달했다.

히타치와 NEC, 삼성전자는 램버스의 요구를 받아들여 특허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은 소송전을 택했다. 하이닉스는 2000년 8월 미국 법원에 램버스 특허가 무효임을 확인하는 소송을 먼저 냈고, 램버스는 다음해 2월 SK하이닉스가 특허를 침해했다며 역소송을 제기했다. 램버스는 2004년엔 D램 업계를 상대로 반독점소송까지 제기해 압박 수위를 높였다.

미국에서의 소송은 하이닉스에 불리하게 돌아갔다. 2006~2008년 캘리포니아주 배심원들은 1차 평결 때 하이닉스의 소송 무효 요청을 기각했고, 2차 평결 때는 하이닉스가 3억달러를 지급할 것을 결정했다. 3차 때는 램버스가 반독점법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평결하기도 했다.

역전 계기는 2011년 만들어졌다. 램버스가 특허 관련 자료를 불법 파기했다는 사실을 안 하이닉스가 배심원이 없는 연방법원 항소심과 환송심에서 연달아 승리한 것이다.

결국 양사는 특허계약을 맺는 선에서 타협했다. SK하이닉스가 향후 5년간 2억4000만달러(약 2700억원)의 특허료를 주고 램버스의 모든 특허를 사용하는 조건이다. 하이닉스는 패소에 대비해 3400억원의 충당금을 쌓아놓은 상태여서 1000억원 이상이 수익으로 환입될 전망이다.

◆특허괴물 공격은 지금도 진행 중

램버스는 매출의 대부분이 특허료 수입인 회사다. 2012년에도 매출 2억3405만달러 중 93%인 2억3238만달러가 로열티였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정보기술(IT) 기업을 상대로 무차별적 소송을 벌인 대가다. 램버스와의 소송전은 한국 기업에 많은 교훈을 줬다. 2000년 이전까지만 해도 특허에 무방비 상태이던 기업들은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LG전자는 2001년 특허 전담조직을 특허센터로 확대했다. 2011년 7월엔 지식재산권(IP) 대학도 신설, 전문가 육성에 힘쓰고 있다.

삼성전자는 2005년 특허경영을 선언하고 사업부별로 IP 관리 조직을 꾸려왔다. 2010년엔 사업부에 흩어져 있던 IP 전담 조직과 인력을 통합해 최고경영자(CEO) 직속 IP센터를 설립했다. IP센터는 특허출원, 소송 대응 외에 라이선싱, 특허매입 등 공격적인 특허전략을 주도하고 있다. SK하이닉스도 특허 개발에 집중해 왔으며 특허 전담인력을 60명 이상 확보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지만 한국 기업에 대한 특허괴물의 공격은 늘고 있다. 미국 페이턴트프리덤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지난해 특허괴물에 소송을 많이 당한 기업 2·3위에 올라 있다.

지난해 국내 IT 기업이 특허료로 외국에 지급한 금액만 해도 10조원에 달하며, 이 중 특허괴물에 흘러간 로열티가 상당액을 차지한다. 세계 최대 특허괴물인 인텔렉추얼 벤처스(IV)가 3세대(3G) 관련 특허 분쟁을 통해 국내 기업에서 챙긴 돈이 1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