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모른체 하면 퇴출 또는 재판회부 결정때 배제해야"

미군이 잇따르는 성범죄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가운데 민간보다 훨씬 허술한 군의 성범죄 방지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려는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지난 22일 육군사관학교에서 남자 상급생도가 여자 하급생도를 교내에서 성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는 점에서 미국 내에서의 논의 방향에 특별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 AP통신은 군 지휘관에 대한 성범죄 관련 책무를 무겁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시민단체 등에서 나오고 있다고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인종차별을 옹호한 지휘관을 파면하는 미군의 기존 제도를 본떠 성범죄를 묵인·방조하는 지휘관도 군에서 퇴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원 의회에는 성범죄 사건의 재판 회부 결정 과정에서 지휘관을 배제하는 법안도 제출됐다.

재판 회부 결정을 성범죄 수사 경험이 있는 군 법무관에게 맡기는 것이 골자다.

미국의 성범죄 피해자 단체와 전직 군인들은 군 성범죄의 최대 문제로 책무성(accountability) 부재를 꼽는다.

지휘관 등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성범죄를 저질러도 민간 사회와 달리 처벌을 피할 수 있다는 생각이 퍼져 있다는 것이다.

'여성군인 행동 네트워크'(Service Women's Action Network)의 아누 바그와티 국장(전 해군 대위)은 "민간에는 성범죄 가해자에게 민·형사상 책임을 묻는 방법이 많아 억제 효과가 있지만 군은 그렇지가 않다"고 강조했다.

미군은 성범죄 대처 코디네이터 등 다양한 피해자 신고 제도를 운영하지만 무용지물이라는 비판이 많다.

승진, 근무환경, 일상에 상관의 영향력이 막대한 군대에서 특히 가해자가 상관이면 신고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다.

성범죄를 축소·은폐하는 문화도 고질적 문제다.

특히 남성과 남성 사이에 일어나는 성범죄는 피해자가 동성애자 낙인 등을 두려워해 사건의 공론화를 꺼릴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전직 군인인 폴 리엑호프는 "남성 피해자가 사건을 밝히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권장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미 국방부는 지난달 30일 '세이프 헬프룸'이라는 제도를 도입했다.

군 성범죄 피해자들이 함께 자신의 문제를 자유롭게 얘기하면서 자신감을 얻고 조언을 나누는 공간이다.

미국 육군사관학교에서는 지난달 현역 병장이 여생도의 샤워 장면을 몰래 촬영하다 적발됐다.

해군사관학교에서도 여성 생도가 캠퍼스 밖에서 남성 생도들에 의해 집단 성폭행 당한 사건이 발생해 파문이 일었다.

(서울연합뉴스) 김태균 기자 ta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