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송전탑 건설 더 미뤄서는 안된다
원자력발전소 안전에 직결되는 제어 케이블의 시험성적서 위조 사실이 드러나 해당 원전 2기의 운전이 정지됐다. 이로써 국내 원전 23기 중 10기가 발전을 못하고 있다. 이 예기치 않은 사고에 대처하느라 발전기의 정기 예방정비를 못해 전력수요가 급증하는 8월에 ‘대정전(black out)’ 사고가 일어날까 걱정된다.

한국은 2009년 전력소비 증가율이 1973년 대비 22배(일본 1.9배, 미국·독일 1.5배)로 커질 만큼 산업이 성장하고 생활수준이 높아졌다. 전력예비율은 경제가 침체했던 1980년대 후반에 50% 이상, 2003년에는 18%를 기록했다. 그런데 전력정책의 잘못으로 인해 2011년 9월에는 강제 순환단전으로 대정전 사고를 가까스로 넘겼고, 지난 겨울에는 공기업 발전소에서 생산하는 전력보다 2배 비싼 값으로 민간발전소의 전력을 사들여 겨우 5.5%를 유지할 수 있었다. 안정적인 전력예비율은 15%다.

식량과 에너지, 환경과 국방은 국가의 존망을 좌우하는 안보사항이다. 그러나 온 지구에 가뭄이 들지 않는다면 식량은 수입으로 대처할 수 있다. 환경문제도 통치자의 의지와 사용자의 동참만 있으면 효과적으로 대응 가능하다. 그러나 에너지자원이 부족하고 인구밀도는 높으며 휴전선과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국에서 전력이란 에너지는 자력으로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그런데도 발전 방식과 발전소 부지 확정, 노후화된 원전 폐쇄와 방사성 폐기물 처리, 송전선로 건설 등의 난제들이 여전히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다.

한국의 주요 발전원은 석탄(31.6%), 액화천연가스(LNG·27.4%) 등의 화석에너지와 원자력(23.6%)이다. 사용 비중이 높고 수입에 의존하는 화석에너지는 가격상승과 자원고갈, 환경훼손 등의 부담이 있다. 우라늄 원석을 가공한 연료봉으로 발전단가를 낮출 수 있는 원자력도 사고 위험과 폐기물 처리 등 난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나라마다 주요 에너지원은 차이가 난다. 중동엔 석유, 남아프리카엔 우라늄 원석이 있는 반면 우리나라엔 서해안의 조력 에너지원과 원자력 기술이 있다. 지진에 안전하며 냉각수와 용수 유입이 편리한 곳을 찾아 원자력발전소를 짓고,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방조제 건설이 경제적이며 환경 훼손이 적은 곳에 조력발전소를 건설하는 것이 부족한 전력에너지를 확보하는 방법이다. 해당 지역 주민을 설득하고, 원자력과 조력발전소 건설에 따르는 부작용과 역기능을 극복할 수 있는 기술개발에 힘을 쏟아야 하는 이유다.

화력과 원자력, 앞으로 건설되기를 바라는 조력은 대단위 발전소일 수밖에 없으므로 발전의 적지에만 건설할 수 있다. 발전단지에서 대도시와 공단 등의 수요처에 최소 손실과 최고 품질의 전력을 전송하기 위해서는 초고압송전설비가 필요하다. 미국 러시아 캐나다에도 1000㎸의 초고압송전설비가 설치돼 있는데, 한국은 검증되지도 않은 초고압송전설비로 인한 전자파 위해 논란에 갇혀 있는 형편이다. 국토가 비좁기 때문에 주거지와 떨어진 곳에 송전선로를 건설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 초고압송전설비에서 발생하는 전자파가 인체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기술과 전자파 차폐기술을 개발해 전력수급에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현대 생활에서 의식주와 전력이 부족한 행복추구는 허구다. 분명한 것은 전력설비 증설이 미뤄지는 만큼 국력과 생활 향상이 늦춰지고 결국엔 국제 경쟁에서 밀려나 쇠락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한 발전단지에 600만㎾만큼의 예비전력을 갖는 전력수급 계획과 이 계획의 실현을 위한 발전방식, 발전소 위치, 전력수송 체계 등을 확정해 일관성 있게 추진해 나아가야 한다. 전기요금을 현실화해 절전을 유도하는 요금정책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우리 아이들이 탄 고층아파트의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멈춰서고, 단수돼 씻을 수도 변기를 내릴 수도 없는 끔찍한 여름을 맞을 수는 없지 않은가.

이은웅 < 충남대 명예교수 전 대한전기학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