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가치도 상승…엔캐리 트레이드 발생시 한국 혼란 줄 수도

23일 일본의 닛케이(日經) 평균주가지수 하락폭(1,143.28포인트)은 역대 11위에 해당할 정도로 컸다.

주가가 이만큼 급락한 것은 이른바 'IT 거품'이 붕괴한 2000년 4월 이후 13년1개월만이다.

이날 주가 폭락 요인은 두가지였다.

하나는 이날 오전 한 때 장기 금리가 급상승하며 1%대에 올랐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영국 HSBC 은행이 발표한 5월의 중국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 잠정치가 49.6으로 기준선인 50을 밑돌았다는 점이다.

장기금리 상승(가격 하락) 추세는 이전부터 대규모 금융완화를 앞세운 아베 정권 경제정책('아베노믹스')의 불안 요인으로 꼽혔다.

일본의 장기금리는 일본은행이 금융완화 정책을 발표한 지난달 4일 역대 최저 수준인 0.315%까지 급락했다가 불과 1개월만에 0.9%대로 상승하는 등 불안한 움직임을 보였다.

처음에는 "주가가 상승하자 은행과 기업들이 투자 대상을 채권에서 주식으로 바꿨을 뿐이고, 일본은행이 계속 국채를 사들이면 조만간 금리가 떨어지고 국채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했지만, 시간이 가면서 다른 분석이 나왔다.

즉 일본은행이 신규 발행 국채의 70%를 사들이기로 한 탓에 민간 투자가들이 사고 팔 수 있는 국채 비율이 확 줄었고, 이 때문에 금리가 불안한 움직임을 보이게 됐다는 것이다.

일본은행의 과도한 시장 개입이 역효과를 불렀다는 의미다.

시장의 눈길은 21∼22일에 열린 일본은행의 금융정책결정회의에 쏠렸지만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총재가 내놓은 대책은 국채를 사는 횟수를 늘리고, 회당 금액을 줄여 시장 충격을 줄인다는 데 그쳤다.

여기에 실망한 투자가들이 23일 오전 국채를 내다 팔면서 장기금리가 오른데다 중국 경기 전망까지 예상보다 나쁜 것으로 나타나자 투자 심리가 얼어붙어 주가가 급락했다는 것이다.

더 걱정스러운 대목은 이날 오후 엔화가치까지 덩달아 상승했다는 점이다.

엔화가치는 이날 오전 달러당 103엔대로 하락했다가 오후 들어 101엔대로 상승했다.

엔화가치 상승이 주목되는 것은 이것이 자칫 '주가 하락→엔화가치 상승→주가 하락'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주가가 하락한 뒤 엔화가치가 상승하는 요인은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투자가들이 위험을 피하기 위해 초저금리인 엔화를 사들여서 비교적 금리가 높은 국가의 통화나 자산에 투자하는 '엔캐리 트레이드'가 발생할 때다.

이럴 경우 엔캐리 자금이 유입되는 나라의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질 수 있다.

한국 등이 엔캐리 트레이드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또 해외 투자가가 그동안 주가 상승시 환위험을 피하느라 엔화를 선매도했기 때문에 주가 하락시 거꾸로 엔화를 사들이는 흐름이 강화될 수 있다는 점도 엔화가치 상승 요인으로 거론된다.

연초부터 아베노믹스 효과로 주가 상승이 거듭되며 엔화 선매도 규모가 커진 만큼 일본 주가가 하락할 경우 엔화가치 상승폭은 그만큼 커질 수 있다.

이같은 요인으로 인해 엔화가치가 상승하고, 이것이 다시 주가 하락으로 이어질 경우 악순환이 완성된다.

니혼게이자신문 인터넷판은 "악순환에 빠질 경우 지금까지의 '엔저→주가 상승→엔저'로 이어지던 구조가 뒤집힐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야당인 민주당의 가이에다 반리(海江田万里) 대표도 "아베노믹스의 위험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다만 시장 전문가들은 이날 주가 하락을 일시적인 조정이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그동안 일본 증시가 과열 양상을 보이는데 대해 경계감이 커졌기 때문에 중국 경기 전망이 발표된 것을 계기로 일시적인 조정 장세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일단 24일 주가 동향을 봐야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니혼게이자이신문 인터넷판에 따르면 사카우에 료타(阪上亮太) SMBC 닛코증권 수석 주식 전략가는 "본격 조정은 아니고, 과열에 대한 단기적인 반동일 것"이라며 미국 고용통계 등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도쿄연합뉴스) 이충원 특파원 chungw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