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감사 '미필적 고의'도 유죄…회계사 '솜방망이 처벌' 끝나나
부산저축은행 회계 감사를 담당한 회계사들에 대한 징역형 판결은 업계에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 이후 이를 묵인한 회계사와 회계법인에 대한 비난 여론이 일었지만 대부분 책임을 면해왔기 때문이다. 법원이 부실 감사의 대가성이나 고의성이 직접 드러나지 않았음에도 이례적으로 무거운 형을 선고한 만큼 업계의 책임도 커질 수밖에 없게 됐다.

◆“미필적으로도 혐의 인정”

부산저축은행 경영진은 2000년대 초반부터 2010년까지 실체가 없는 ‘금융자문수수료’를 수익으로 계상하는 등의 수법으로 재무제표를 분식 결산하고 수천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았다. 김모씨 등 회계사 네 명은 각각 2006~2007년부터 2010년까지 부산저축은행 외부감사를 하면서 보고서에 ‘적정의견’을 제출해 부실을 묵인한 혐의로 2011년 기소됐다.

김씨 등은 “금융자문수수료 계약서가 구비돼 있어 용역에 대한 정당한 대가로 알았다”며 “허위로 기재할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또 △삼일회계법인 등 다른 법인도 앞서 적정의견을 제시한 점 △금융감독원 검사에서도 수수료가 문제되지 않았던 점 등을 들어 회계 부정 사실을 몰랐다고 설명했다. 또 허위 기재를 대가로 금품 등을 주고받지 않았다는 사실도 강조했다.

그러나 법원은 2007년 대법원 판례(K업체 미필적 고의로 인한 분식회계로 회계사 200만원 벌금형 확정)를 들어 “분식회계의 내용이 있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더라도 재무제표에 영향을 미칠 중요한 부정이나 오류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여러 표지를 인식했는데도 감사 범위를 확대하지 않고 ‘적정의견’을 기재한 이상 허위 기재에 적어도 미필적 고의는 있었던 것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들이 △수익의 인식 △채권의 실재 여부 △장기간 미회수된 상황 등을 지적하는 등 매년 금융자문수수료의 수익 인식과 관련된 문제점을 인식했음에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유죄가 인정된다고 재판부는 덧붙였다.

◆회계법인들 전전긍긍

이번 판결은 회계업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부실 감사를 묵인한 공인회계사나 회계법인을 형사 처벌한 전례가 드물기 때문이다. 지난해 보해저축은행을 부실 감사한 혐의로 기소된 양모 회계사는 최근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2000년대 초 40조원대 대우 분식회계 사태 때 외부 감사를 맡았던 회계사들도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를 선고받는 데 그쳤다.

행정 처벌도 ‘솜방망이’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0년 이후 부실 회계 감사로 인한 공인회계사 처벌 건수는 281건, 이 중 저축은행 부실 감사로 조치된 경우는 14건에 불과했다.

안진회계법인(솔로몬·한주저축은행) 신한회계법인(미래저축은행) 한영회계법인(한국저축은행) 등은 저축은행사태 때 ‘부실 감사’ 비난을 받은 바 있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회계사나 법인이 부실 감사를 했다고 하더라도 고의성을 인정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수사 기관 고발·통보 없이 행정 조치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며 “이번 판결이 감사업무를 수행하는 회계사들에게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미필적 고의

어떤 범죄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인식한 상태에서 행위를 하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건물 위층에서 밖으로 돌을 던지면 길 가던 사람이 맞을 수 있다고 예견하면서도 ‘그래도 할 수 없다’며 돌을 던지는 것을 말한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