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행복기금 가접수 결과, 소액·저소득 채무자가 예상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나 일각에서 우려한 도덕적 해이 논란은 다소 사그라질 듯하다.

다만, 이들이 다시 다중채무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빚 탕감→채무상환→자활을 통한 소득수준 증대의 선순환 구조에 편입되도록 하는 것은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행복기금 신청자 평균 채무 1천300만원
9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22∼30일 진행된 국민행복기금 가접수 현황을 잠정 분석한 결과, 신청 건수 9만4천36건 가운데 채무가 2천만원 미만인 경우가 전체의 73.8%였다.

빚이 500만원 미만인 소액 채무자도 전체의 27.4%에 달했다.

캠코 측은 이들의 빚이 평균 1천300만원 수준이며 이는 10년 전인 2000년대 초반 한마음금융 채무지원자 평균 채무(1천100만원)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행복기금 지원 대상은 올해 2월 말 현재 6개월 이상·1억원 이하 연체·다중채무자이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빚이 1억원에 육박하는 신청자 대신 이보다 훨씬 적은 빚을 진 채무자가 많았던 것이다.

신청자들의 채무가 예상보다 적은 것은 다수가 제2금융권이나 대부업체 채무자이고 이들이 신용대출로 받을 수 있는 금액도 많지 않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신청자의 소득 역시 1천만원 미만이 28.9%, 1천만원∼2천만원 미만이 47.4%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캠코 관계자는 "바꿔드림론 신청자의 평균 소득이 연 1천800만원 수준인데 그보다 더 어려운 분들이 신청한 것"이라며 "도덕적 해이 논란이 있기는 했지만 신청을 받아보니 지원이 필요한 서민층이 예상보다 많았다"고 전했다.

다만, 이들이 남은 빚을 제대로 갚는 것과 다시 다중채무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안정적인 소득을 창출하는 것은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실제로 행복기금 접수창구에서 만난 한 70대 남성은 빚 탕감 조건이 되지만 남은 빚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막막해 채무조정을 망설이고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이 남성은 "절반을 깎아준다 하더라도 나머지 절반은 갚아야 하는데 아내는 아파서 몸을 움직이기 어렵고 나는 돈을 벌 수 있는 곳이 없다"며 "우리 같은 사람들은 일할 곳을 찾아야 채무조정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기금이 빚을 모두 탕감해 주는 게 아니므로 나머지 금액을 상환해야 하는데 신청자들의 평균 소득이 예상보다 적다"고 우려했다.

조 위원은 "채무조정에서 중도 탈락하면 개인은 원금과 연체이자를 다시 짊어져야 하고 이는 행복기금 부실을 초래한다"면서 "행복기금 측은 이 제도를 통해 신용회복이 가능한 사람을 잘 걸러내고, 고령자나 소득 창출이 어려운 신청자는 개인회생 제도를 이용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제언했다.

◇20일부터 연대보증 채무자도 구제
행복기금 측은 신속한 지원을 위해 가접수 마감 직후인 3일과 6일, 문자메시지와 우편으로 채무조정 가능 여부를 잠정 통보했다.

행복기금 관계자는 "가접수 기간에 신청해야 채무조정 비율이 높아지는 것으로 알고 서둘러 신청한 분들이 많은 것 같다"며 "10월 말까지만 개별신청을 하면 일괄매입보다 큰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달 20일부터는 연대보증자의 개별신청 접수도 시작된다.

주채무가 국민행복기금 지원요건(2월말 현재 1억원 이하·6개월 이상 연체채권 보유 등)에 해당하는 연대보증자는 10월 31일까지 채무조정을 신청하면 된다.

총 채무액을 채무관계인(주채무자+보증인) 수로 나눈 뒤 상환능력에 따라 30∼50%를 감면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주채무자와 연대보증인이 1명씩이고 채무 원금이 1천만원, 감면율이 50%이면 주채무자는 채무조정 시 500만원을 갚아야 하지만 연대보증인은 1천만원÷2(주채무자+연대보증인)X(1-50%)인 250만원만 갚으면 된다.

연대보증인은 채무조정을 이행하면 연대보증책임을 면제받는다.

주채무자는 국민행복기금에는 잔여채무를, 연대보증인에게는 구상권 채무도 지게 된다.

신용보증기금법 개정안이 지난달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하반기에는 신보 구상채무가 있는 사람도 채무조정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는 신보가 채권을 매각할 수 없지만, 법이 개정됨에 따라 채권을 팔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국민행복기금은 신용보증기금이 구상채권을 행복기금 협약기관인 캠코에 매각하면 이를 다시 사오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역시 올해 2월 말 기준으로 6개월 이상·1억원 이하 연체 채무가 있는 사람이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심재훈 고유선 기자 president21@yna.co.krcind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