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하이텍 부천공장 직원들이 반도체 재료인 웨이퍼의 상태를 검사하고 있다.  /동부하이텍  제공
동부하이텍 부천공장 직원들이 반도체 재료인 웨이퍼의 상태를 검사하고 있다. /동부하이텍 제공
“중국 스마트폰 시장이 우리를 살려줄 겁니다.”

경기 부천시 도당동에 있는 동부하이텍 부천공장. 8일 이곳에서 만난 직원들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1997년 창사 이래 한 번도 연간 단위의 흑자를 내지 못한 것에 아랑곳하지 않는 표정이다. 회사가 ‘밑빠진 독’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지만 직원들은 “곧 달라질 것”이라는 확신에 차 있었다.

창사 16년 만에 가장 바쁜 동부하이텍
이들이 믿는 구석은 중국 스마트폰 시장. 송재인 동부하이텍 마케팅 담당 상무는 “중국에서 중저가 스마트폰이 많이 팔리면서 2011년부터 반도체 주문량이 매년 두 배 이상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11년 300억원에 불과했던 이 회사의 중국 스마트폰 관련 매출은 지난해 700억원을 넘어섰다. 올해는 1500억원을 돌파할 전망이다. 부천공장 가동률도 작년 말 70% 초반에서 지난달부터 85%대로 올라섰다. 올 하반기엔 90%를 넘어 100% 완전가동에 근접할 것으로 보고 있다.

4조3교대로 일하는 생산직을 뺀 일반 직원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연장 근무나 잔업을 한다. 전상국 제조팀장은 “작년까지만 해도 장비와 공정 담당 직원들이 오후 7시 전에 퇴근했지만 올해는 주문이 늘면서 밤 10시가 돼야 겨우 일을 끝낼 수 있을 정도”라고 했다.

창사 16년 만에 가장 바쁜 동부하이텍
동부하이텍에 밀려오는 주문량의 대부분은 아날로그 반도체. 연산과 정보처리 기능을 하는 시스템 반도체 중 하나로, 빛과 소리 등을 디지털 신호로 바꿔주는 역할을 한다. 사람으로 치면 시각·청각·후각 등 오감에 비유할 수 있다.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는 세계 1위지만 아날로그 반도체에선 존재감이 없다.

삼성 갤럭시S4나 LG 옵티머스G에 들어가는 아날로그 반도체는 90% 이상 수입제품이다. 애플 아이폰5에 쓰이는 19개의 아날로그 반도체 중 한국산은 하나도 없다.

1997년 옛 동부전자로 시작한 동부하이텍은 2002년 아남반도체를 인수한 뒤에도 메모리와 다른 시스템 반도체만 생산했다. 아날로그 반도체 사업을 시작한 때는 2008년. 반도체 설계업체(팹리스)에서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전력관리칩과 이미지 센서 등의 주문을 받아 대신 생산(파운드리)하는 형태다. 2011년과 2012년 간간이 분기 흑자를 내기도 했지만 연간 흑자를 기록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뒤늦게 이 사업에 뛰어든 동부하이텍에 대량 주문하는 곳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부하이텍은 중국 시장을 통해 후발주자의 약점을 극복했다. 중국 내 스마트폰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아날로그 반도체 수요가 급증할 것이라는 예상이 들어맞았다. 중국 시장의 스마트폰 판매량은 2011년 1억대에서 지난해 1억7000만대로 늘었으며, 올해엔 2억대를 돌파할 가능성이 높다. 덕분에 동부하이텍도 올해 창사 이래 처음으로 연간 흑자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동부하이텍이 15년간 적자를 보면서도 반도체 사업의 꿈을 계속 키워갈 수 있었던 건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의 집념 덕분이라는 게 그룹 안팎의 평가다. 김 회장은 동부가 반도체 사업을 포기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때마다 특유의 뚝심으로 돌파구를 마련했다.

그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10월 “시스템반도체 사업은 국가를 위해 꼭 필요한 사업이다. 어떤 위험이 따르더라도 도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09년 10월엔 동부하이텍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3500억원의 사재를 출연했다. 그러면서 늘 동부하이텍 직원들에게 “만에 하나 반도체 사업에서 실패하더라도 누군가가 이어받아 성공시킬 수 있다면 파이어니어로서의 역할에 충분한 보람을 느낄 수 있다”고 용기를 북돋웠다.

김재영 동부하이텍 수석엔지니어는 “아날로그 반도체를 국산화해 세계적 반도체 업체로 성장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전 직원들이 똘똘 뭉쳐 있다”고 말했다.

부천=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