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공포마케팅 뒤엔…
웬만해서 의사들은 굶지 않는다. 최고의 전문직인데다 사회제도로 신규진입도 엄격하게 규제해준다. 사회발전에 맞춰 업무영역을 스스로 만드는 직업이다. 가령 간(肝)전문의를 보자. 못살던 시절엔 간에 질환이 있어도 아무나 의사를 못 만났다. 사망 직전 한이나 풀어보자는 게 진료의 전부였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사전 진단부터가 큰 시장이다. 지금 당장은 문제가 없지만 먼 훗날까지 건강한 간을 유지해준다는 예방 컨설팅은 부가가치가 더 높다.

변호사도 비슷하다. 사회가 복잡다단해질수록 송사는 많아지게 마련이다. 법률자문은 더 큰 시장이다. 1, 2년이 아니라 10년 후까지 봐주겠다면 청구서는 더 두터워진다. ‘굶은 변호사는 굶주린 사자보다 더 무섭다’는 말도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각자 역량에 따라 자기 업무를 만들어가니 진짜 프로가 구별되는 세계다. 경제 전반에 공포분위기가 확산될수록, 기업의 미래가 불확실해질수록 율사들의 활동 반경도 커진다.

절망감, 비관론 파고든 컨설팅

의사 변호사 등 전통적인 전문가 대열에 새롭게 등장한 ‘초현대판 프로’들도 가세하고 있다. 국제 컨설팅기업들, 다국적 회계법인, 광고홍보(PR) 전문가들이 움직인다. 경제적 공포기에 접어든 한국의 컨설팅 시장을 노린 행보다. 우리 경제에 새삼 큰 일이 일어난 것처럼, 이대로 가면 한국 기업들이 나라 안팎에서 주저앉을 것인양 일단 겁부터 주는 것으로 영업을 시작한다. 외환위기 때도 겪었던 일이다. 방치하면 중산층이 다 무너진다고 하고 북한 핵보다 경제가 더 큰 위험이라고 공포분위기를 조성한다. 턱없이 낮은 성장전망치를 제시하는가 하면 기업 이미지가 추락했다고 겁준다.

한때 청년들을 상대로 청춘마케팅이 요란하더니 이젠 공포마케팅이 다가온다. ‘아프니 청춘 아닌가’라고 달콤하게 속삭이며, 청춘이 마냥 최고라며 유약해빠진 젊은이들을 동정하며 아부하던 청춘마케팅이 근거 없이 막연한 낙관론을 퍼나른 것이라면, 공포마케팅은 비관론과 절망감을 묘하게 상품화한 것이다. 그러면서 미래비즈니스를 가장한다. 당장 힘들수록, 앞길이 어두워 보일수록 공포마케팅 효과는 자연 극대화된다. 시장의 불투명성이 그 자체로 호재다.


미래 자문 내세운 공포세일즈

전문가들은 겁을 줘도 격이 다르다. “간 수치 흐름이 이런데도 예방치료를 받지 않으시겠다고?” “해외 경쟁기업이 이렇게 특허소송을 걸어올 텐데도 최정예 우리의 자문을 피하신다?” 이런 공포마케팅에는 외국 프로들도 뛴다. 지난 2년 새 서울에 문을 연 영·미 로펌만도 16개다. 컨설팅 계통 다국적 기업도 나름 정예들이다. 우리 경제의 약점을 묘하게 찌르는 진단으로 시작하곤 한다. 그럴 듯한 1차 처방전이 맛보기처럼 뒤따른다. 어디까지나 충고이고 권유다. 그러면서 기업엔 땅에 떨어진 이미지라고 세세한 조사 수치를 내던진다. ‘구조조정을!’이라며 공공부문을 노려보는 시선은 정권 초반기 권력속성까지 꿰뚫고 있다. 물론 지속가능 발전이라는 고언으로 포장돼 있다. 이 절박한 공포를 숫자로 꼭꼭 짚는데 자문비 얼마가 대수인가.

한국 경제를 때리고 비관하는 최근의 기사들에는 이런 공포마케팅도 깔려 있다. 무엇보다 그럴 만한 여건이 돼 있다. 북한 리스크에다 한국의 정치권력은 경제민주화라는 초대형 올가미를 던져 놓았다. 이런 우울한 상황에서 탈출을 도와주겠다는 것이다. 한국이 공포마케팅장이 되기까지 그 논리가 먹힐 만한 환경을 우리도 조성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막연한 위로로 ‘세상 탓’을 주입하는 청춘마케팅만큼이나 비관론에 기반한 공포마케팅도 그래서 겁난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