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너무 다른 드라기와 김중수
“중앙은행 총재로서 ‘시장과 짝짜꿍한다’는 말에 거부감을 갖는 것은 이해하겠지만, 정상적인 소통마저 외면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한 채권 애널리스트는 지난달 30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4월 의사록이 공개된 뒤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며 이같이 불만을 토로했다. 김중수 한은 총재는 기준금리를 동결했던 4월 금통위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금리동결 당위성을 ‘확고하게’ 설명했다. 회의 분위기를 묻는 질문에도 “이번 결정은 만장일치가 아니었다”는 말이 전부였다. 하지만 의사록에 드러난 금통위 분위기는 총재가 ‘3(인하) 대 3(동결)’에서 캐스팅보트를 행사할 정도로 팽팽하게 엇갈렸다. 이 정도 상황이었다면 금리동결에 내부 이견도 많았다는 정도의 설명은 있어야 했다는 지적이 많다.

김 총재의 이 같은 스타일은 지난 2일 밤 외신을 통해 전달된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와도 대조적이다. 드라기 총재는 기자간담회에서 회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달했다. 그는 “이날 금리 결정이 만장일치는 아니었다”며 “일부 위원 중에는 25bp(1bp=0.01%포인트) 이상 더 큰 폭으로 인하를 요구한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중앙은행이 소통하는 방식은 경제 상황이나 정책당국의 소통문화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드라기 총재가 대놓고 금리인하를 얘기할 정도로 유로존 상황이 심각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혼란은 김 총재 자초한 측면이 있다. 금통위 이후 의사록이 공개된 2주 동안 금리는 계속 출렁거렸고, 시장엔 ‘의사록 사전 유포설’까지 나왔다.

한 민간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총재가 일찌감치 금통위 내부 분위기를 알려줬더라면 시장이 우왕좌왕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결국 자신이 캐스팅보트를 행사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데 부담을 느낀 것 아니냐”고 말했다. 금통위 간담회는 총재 개인의 생각을 얘기하는 자리가 아니다. 김 총재 역시 지난 1월 간담회에서 “금통위 의장으로서 전반적인 의사결정의 내용을 설명하는 자리”라고 말했다.

시장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세계에서 최단기인 2주 만에 의사록을 공개하기로 한 마당이라면, 간담회에서 표 대결 결과만이라도 밝히는 게 나았지 않았을까. 다른 사람 의견조차 자신 있게 전달한 드라기 총재 모습이 더욱 크게 다가온다.

서정환 경제부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