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씁쓸한 '위대한 개츠비' 출간 경쟁
“출판계의 쏠림 현상은 큰 문제입니다. 외국영화가 인기를 끈다 싶으면 ‘스크린셀러’ 효과를 노리고 똑같은 책을 서로 앞다퉈 내놓곤 합니다. 출혈경쟁은 불보듯 뻔하지요.”

최근 스콧 피츠제럴드의《위대한 개츠비》출간 경쟁에 대해 한 출판사 대표는 기자에게 이같이 말했다. 오는 16일 할리우드 리메이크 영화 ‘위대한 개츠비’ 개봉에 맞춰 출판사들이 최근 한 달 동안 10여권의 번역본을 내놓고 있는 것을 지적한 얘기다.

열림원은 지난달 25일 전문번역가 김석희 씨가 옮긴《위대한 개츠비》번역본을 내놨다. 책만드는집 미래문화사 스마트북 등 군소 출판사들도 앞다퉈 뛰어들었다. 작품을 해설해주는 책까지 등장했다. 서점가에 이미 40~50여종의 판본이 깔려 있는데도 일어난 과열 현상이다.

출판계는 연초《레 미제라블》특수(特需)를 경험했다. 영화가 5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민음사와 펭귄클래식코리아가 내놓은 5권짜리 세트는 각각 10만부, 5만부나 팔려나갔다.《위대한 개츠비》도 민음사의 경우 최근 3주간 3만부를 팔아 일단 특수를 누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올여름께 나올 일본의 대표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판권 확보 경쟁도 출판계의 쏠림 현상을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김영사 21세기북스 등 논픽션 도서를 주로 출간해 온 출판사들까지 이 경쟁에 뛰어들었다. 출판사가 저자에게 미리 주는 선(先)인세 규모가 2010년《1Q84》(전 3권)의 기록(약 11억원)을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출판계는 보고 있다. 일부 출판사에서 “판권을 따낸다면 20억원을 내도 아깝지 않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다.

지난 한 해 동안 발행된 책의 종 수는 2011년에 비해 약 10% 줄었다. 해마다 10% 가까이 감소하는 추세다. 출판사들이 애써 양서를 내놓아도 스크린셀러나 일부 베스트셀러, 잘 알려진 외국 작가 작품으로 독자들의 눈길이 쏠리는 게 현실이기는 하다.

하지만 출판사들이 앞다퉈 독자 입맛에 맞는 책만 내놓는 쏠림 현상은 업계 스스로 경쟁력을 갉아먹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위대한 개츠비》출간 경쟁을 보며 ‘출판의 다양성’을 생각하게 되는 이유다.

박한신 문화부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