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후 5시에 나머지 인력 50명이 나오면 전기가 끊길 거라는데 그럼 현지 설비들은 모두 고철이 되는 겁니다.”

지난 27일 개성공단 인력 철수가 본격화된 후 입주기업들은 망연자실한 모습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대다수 기업은 29일 남아있는 인력 50명이 귀환한 뒤에는 파주에서 문산을 거쳐 들어가는 전기마저 끊길 것으로 예상했다. 단전 시 공장 설비들의 운전이 멈춰 개성공단이 사실상 폐쇄 수순에 들어갈 것으로 내다봤다. 전자부품업체의 경우 정밀기계에 녹이 슬기 시작하면 북한의 불량 전기로는 가동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개성공단기업협회 한 관계자는 “섬유나 각종 자재를 녹이는 설비들은 공장을 안 돌려도 24시간 전원을 넣어 적정 온도를 유지해야 하는데 한 번 전기가 끊기면 치명적이다”고 전했다.

○단전 시 개성공단은 사실상 ‘폐쇄’ 수순

[개성공단 폐쇄 위기] 전기 끊기면 설비는 고철로…"손실보상 얼마나 받을지…"
전기를 끊지 않은 상황에서 이른 시일 내에 공단이 재가동된다면 복구가 가능하지만 장기화할 경우 사실상 재가동은 불가능하다는 게 입주업체의 설명이다. 한 업체 관계자는 “5일 이내 정상 가동이 안 된 채 한 달 이상 지속될 경우 설비 고장 및 노후화로 공장은 끝장난다”고 말했다. 일부 업체는 재가동 여부와 상관없이 자진철수를 준비하고 있다.

○정부 피해보전 대책은 ‘막막’

28일 현재까지 업체들이 정부로부터 받은 대책이라곤 부가세 유예 외엔 없다. 이마저 면제가 아닌 최장 9개월 납부를 유예받은 정도다. 업체들은 정부가 경협자금을 통한 지원 등 말만 거창하게 늘어놓을 뿐 실질적인 지원 방안은 없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개성공단이 폐쇄되면 입주기업이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는 방법은 남북경협보험이 유일하다. 남북경협보험은 개성공단에 투자한 기업이 피해를 볼 경우 남북협력기금을 통해 최대 70억원 한도에서 투자금의 90%까지 보상해주는 제도다. 하지만 초기 투자금을 받는 게 아니라 감가상각한 현재 잔존투자금(잔존가치)에 대한 지원을 받기 때문에 완전한 손실보상은 힘들다. 예를 들어 개성에 진출할 당시 100억원을 투자한 기업의 투자 설비에 대한 현재 잔존가치가 50억원이면 45억원의 보상금만 받게 되는 것이다.

○거래처 ‘손해배상청구’ 이번주가 분수령

123개 기업 중 100여개 기업의 원부자재, 반제품, 완제품 등이 개성에 남아 있다. 4월3일 통행제한 이후 승용차 등을 통해 일부 제품을 가지고 나왔지만 생산량의 95%가량은 아직 가지고 나오지 못했다.

협회 관계자는 “입주 업체들은 제조원가 피해를 보지만 시장에 파는 거래처 입장에선 입주업체의 연간 제조원가를 넘어서는 비용손실을 입게 된다”며 “이들이 손해를 보는 순간 더 이상 정치적인 배려는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입주업체들은 거래처들의 ‘클레임 러시’가 이번주부터 본격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