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해외 소득자 10만여명에 대해 전수조사에 나선 것은 국내 거주자의 해외 소득 상당액이 국내에 제대로 신고되지 않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미신고된 대규모 해외 소득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한 추가 세수 확보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들 계좌가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피하기 위한 자금세탁이나 역외 탈세 등에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이 국세청의 설명이다.



○해외 국세청과 공조 ‘결실’

물론 해외 소득이나 계좌가 있다고 모두 탈세 등의 범죄와 관련이 있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현재 국세청이 확보하고 있는 해외 계좌 수가 600여개에 불과해 미신고 계좌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가운데 상당수가 소득을 숨기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게 국세청 판단이다.

현행 국세조세조정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국내 거주자가 해외에서 거둬들인 소득은 원칙적으로 다음해 종합소득세 신고기간(5월)에 신고해야 한다. 신고하지 않을 경우 소득세를 추징당함은 물론 미납부 가산세(하루 0.05%)도 부과된다. 해외에 소득이 없어도 해외 계좌에 10억원 이상의 돈을 예치하고 있으면 종합소득세 신고 기간에 금융계좌를 신고해야 한다. 얼마 전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에서 낙마한 한만수 씨의 경우도 뒤늦게 해외 소득을 신고하면서 의혹이 불거진 경우다.

국세청이 이번에 전면적인 조사에 나서게 된 것은 이들 10만여명의 명단을 다른 나라 국세청에서 받았기 때문이다. 한국과 조세조약을 맺은 77개국 국세청이 최근 3년 동안 한국에 통보한 명단이다. 예를 들어 미국 국세청이 현지 회사를 세무조사하는 과정에서 이 회사가 한국인에게 돈을 지급한 내역이 발견되면 이를 한국 국세청에 알려주는 식이다.

지금까지 조세조약을 맺은 국가 간에는 이처럼 국경을 오가는 자금에 대해 명단을 통보해 왔다. 국세청 관계자는 “해외에서 번 소득을 조세피난처 등에 숨기는 사례가 늘면서 주요국 세무당국 간에 정보 교환과 공조를 확대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며 “최근 국내에서도 역외 탈세가 심각해지고 있어 이번 기회에 탈세의 뿌리를 발본색원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국세청에 따르면 2008년 30건, 추징 세액 1503억원에 불과하던 역외 탈세 적발 규모는 2010년 95건, 5109억원으로 급증했고 지난해엔 202건, 8258억원을 기록하는 등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기러기 아빠’ 계좌는 제외

국세청이 최근 ‘선박왕’ 권혁 시도상선 회장과의 재판에서 승소한 점도 이번 조사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는 후문이다. 지난 2월 법원은 해외 법인과 계좌를 통해 소득을 탈루한 권 회장에 대해 종합소득세와 법인세 포탈 혐의를 유죄로 인정, 징역 4년 실형과 벌금 2340억원을 선고하고 그를 법정구속했다. 국세청은 이를 국내에 거주하면서도 신분세탁을 통해 비거주자로 위장하고 해외 소득을 국내에 신고하지 않는 자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본 것이다.

국세청은 10만여명의 계좌주 가운데 거액의 소득을 올리고도 신고를 하지 않은 사람을 우선적으로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따라서 ‘기러기 아빠’ 등이 학비 송금용으로 해외에 보유하고 있는 계좌는 조사 대상에서 제외된다. 임환수 조사국장은 “외국 기관이나 해외 기업 등에서 임금 수임료 수수료 등 각종 명목으로 받은 돈을 미신고 상태로 해외 계좌에 숨긴 이들이 중점 타깃”이라고 말했다.

조사 과정에서 10억원 이상의 해외 계좌를 신고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금액 대비 최고 10%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특히 해외 계좌 합계금액이 50억원을 넘으면 내년부터 명단 공개 및 형사 처벌도 이뤄진다.

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