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텔스(stealth)는 남 몰래 잠행하며 무언가를 한다는 영어 단어다. 상대에게 결정적 일격을 가하기 위해 은밀하게 접근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레이더 망에 포착되지 않는 항공기나 함정을 지칭하는 말로 쓰이는 것도 그래서다. 꼭 군사분야에만 국한돼 쓰이지는 않는다. ‘스텔스 택스(stealth tax)’라는 말도 있다. 납세자들이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만든 세금이다. 부가가치세 주세와 같은 간접세가 여기에 해당한다. 소득세 같은 직접세와 달리 거의 조세저항 없이 슬쩍 세금을 거둘 수 있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1998년부터 영국 정치권에서 쓰이기 시작했으니 최근의 신조어인 셈이다. 당시 야당은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이 유권자들도 잘 모르는 스텔스 택스를 올려 모자라는 세수를 벌충한다고 비판하곤 했다.

이런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스텔스라는 말은 여전히 대부분 군사 용어다. 스텔스의 기본 원리는 레이더로부터 나오는 전파가 항공기 등에 부딪혀도 반사되지 않게끔 특수 제작하는 것이다. 비행기 날개나 동체 부분을 ‘W’자 모양이나 오목거울처럼 설계하면 이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여기에 기체 표면에 전파를 흡수하는 도료까지 바르면 더욱 효과를 높일 수 있다. 설사 일부 전파가 반사되더라도 레이더는 이를 작은 새 정도로 인식해 무시한다는 것이다.

스텔스 기술은 주로 폭격기 전투기 등 군용항공기와 함정에 적용되는데 현재 이를 실전용으로 활용하고 있는 국가는 미국 정도다. 미국은 F-117, F-22 등의 스텔스 전투기와 ‘B-2(스피릿)’라는 스텔스 폭격기를 보유 중이다. F-117은 처음 실용적인 스텔스 시대를 연 항공기로 걸프전 때 맹위를 떨쳤다.

미 공군의 B-2 두 대가 지난 28일 군산 앞 해상에서 폭격 훈련을 실시했다. 미국 본토인 미주리주 화이트먼 공군기지를 출발해 1만500㎞를 날아와 서해상에서 연습을 한 뒤 복귀했다. 한·미 연합 독수리연습의 일환이다. B-2 폭격기는 핵폭탄 16개 등 20여t의 무기를 적재하고 초음속으로 날면서 1만2200m 상공에서 유도장치를 이용, 폭탄을 조준 투하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레이더에는 거의 탐지되지 않아 ‘하늘의 유령’이라고도 불린다.

한미연합사가 B-2 폭격기의 훈련 사실을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북한의 계속되는 도발 위협에 맞대응하는 차원으로 보인다. 북한이 28일 미사일부대에 1호 전투근무태세를 발령한 것도 B-2의 출현 때문이었다. 적이 모르게 접근해 기습하는 것이 스텔스의 본령이다. 그런데 공공연하게 존재를 드러내며 일종의 무력시위를 한 셈이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