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쿨하다 못해 냉혹해…회식은 없다 '뿔뿔이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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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계 기업 직원의 애환
예고없이 하루아침에 회사 철수…해고 통보도 이메일로
나는 나, 너는 너…삼겹살에 소주 한잔 그리워라
애국심과 애사심 사이
일본계 기업 직원의 딜레마
독도 도발 일본에 화나지만 회사 매출 불똥 튈까 전전긍긍
뜨거운 '한국의 情' 알려주마
덴마크 출신 부사장 전보 발령
바이킹 모자 쓰고 환송회하자 눈물 흘리며 "코리아 원더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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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시대에 맞춰 외국계 기업에 근무하는 김과장 이대리들도 늘어나고 있다. 외국계 기업 하면 대개 ‘높은 연봉’ ‘성과 중심’ ‘유연한 조직문화’ 등 긍정적인 모습들을 떠올리게 된다. 대학생 사이에서 구글 등은 가장 선망하는 꿈의 직장이기도 하다. 이런 기대와 달리 실제로 외국계 기업에 다니는 김과장 이대리들이 겪는 애환도 적지 않다.
○워크숍 날이 ‘대학살’의 날
지난해까지 외국계 금융회사에 다니던 김 부장은 최근 연봉이 줄어드는 것을 감수하고 국내 중견기업으로 옮겼다. 얼마 전 같은 팀 동료였던 이 부장의 갑작스러운 퇴직을 보고 이직을 결심하게 된 것. 이 부장은 영업 실적이 경쟁사에 비해 좋지 않아 윗선으로부터 몇 번 지적을 받았다. 그런데 어느 날 출근해 컴퓨터를 켜 보니 ‘그동안 수고했다. 더 이상 함께 하지 못해 아쉽다’라는 본사 사장 명의의 이메일이 도착해 있던 것. 김 부장은 동료 이 부장이 그날 쓸쓸히 짐을 싸던 모습이 생생하다. “국내 기업에서는 이 정도로 냉혹한 인사 시스템을 찾아보기 힘들 것입니다. 회사에 몸바친 사람에게 면담도 아닌 이메일로 해고를 통보한다는 걸 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외국계 금융회사의 현 부장은 본부 워크숍에 갔다가 뜬금없이 본부장 대행을 맡게 됐다. 워크숍 행사가 있던 그날, 5명이 해고 통지를 받았고 그중에는 본부장도 끼여 있었다. 자신은 회사에 남았지만 떠나는 동료들을 보면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인력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더라도, 하필 ‘본부의 결의를 다지는 워크숍 날 해고 통지를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희는 그나마 최악은 아니에요. 하루아침에 한국 지사의 문을 닫는 외국계 금융사도 있으니까요. 한국도 글로벌 금융사의 ‘작은 지점’ 한 곳에 불과한 거죠.”
○30분 통역에 12시간 비행기 이동
외국계 기업이라면 대개 국내 기업에 비해 업무 효율성을 중요시한다고 생각하지 쉽지만 꼭 그렇지 않다. 외국계 담배회사에 근무하는 김 대리는 영어는 물론 프랑스어에도 능통하다. 그는 어느날 직속 상사인 박 전무와 함께 프랑스 출장길에 올랐다. 김 대리는 가지 않아도 되는 출장이었지만, 통역 역할 때문에 동행했다. 이날 김 대리는 박 전무와 함께 12시간의 비행시간 끝에 파리에 도착, 현지 바이어를 만났다. 하지만 이날 바이어와 박 전무가 직접 이야기를 나눈 시간은 고작 30분. 결국 30분간 통역을 마친 후 또 곧바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외국계 기업이 업무 효율성을 중요시한다는 것은 착각입니다. 전무 한 사람 편하게 하려고 30분 통역을 위해 프랑스를 왔다갔다 하다니…. 비행기 값이 얼마나 들었겠습니까.”
○“반일 감정 때문에 힘들어”
일본 유학을 다녀온 홍 주임이 다니는 일본계 제약회사는 한국 지사인데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이 많은 편이다. 홍 주임은 요즘 한·일 관계가 악화되면서 자신의 입지가 왠지 불리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위안부, 독도 문제에 이어 일본 제품 불매 운동까지 벌어지자 자신을 바라보는 일본인 직원들의 시선이 곱지 않게 느껴진다. 한 일본인 간부는 어느 날 이유 없이 홍 주임이 속한 팀을 꾸짖는가 하면, 독도 문제가 크게 이슈화했을 때는 그날 저녁에 잡힌 회식이 이유 없이 취소되기도 했다. “전 그저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할 뿐인데…. 여기가 한국이어서 그런지 그분들의 피해의식이 크고, 그것이 제겐 더 부담스럽네요.”
○김치찌개, 삼겹살에 소주 한잔 그리워
팀원 간 화합을 중시하는 국내 기업에 비해 외국계 기업의 조직문화는 좀 더 개인적이다. 국내 대기업 전자계열사에서 근무하다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지난해 말 외국계 IT기업으로 옮긴 황 과장은 문화 충돌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그는 요새 전 직장 동료들만 만나면 이전 직장으로 복귀할 수 없느냐고 하소연한다. 전 직장에 비해 직급도 한 단계 높아지고, 연봉도 많아졌지만 전혀 즐겁지 않다는 것이다. 술 좋아하고, 활달한 성격의 황 과장에게 퇴근시간만 되면 제각기 뿔뿔이 흩어지고, 팀원끼리 회식 한번 안 하는 분위기는 견디기 힘들다. “동료끼리 퇴근 후 소주 한잔 걸치며 스트레스를 풀던 예전 직장이 솔직히 그립습니다.”
최 대리는 외국 유학도 다녀오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실력으로 유명 외국계 기업에 입사했다. 사내에서도 ‘근면한 한국인’의 전형으로 통한다. 그런 최 대리가 가장 곤혹스러운 때는 점심시간이다. 부서장이 외국인인 데다 팀 동료도 대부분 유학 등을 통해 외국생활이 몸에 밴 사람들이다. 그래서인지 점심이나 회식 때면 어김없이 스테이크나 파스타, 혹은 패스트푸드를 선호한다. 하지만 ‘오리지널 한국인’인 최 대리는 점심 때 땀흘리며 먹는 김치찌개가 그렇게 그리울 수 없다. “직장생활 5년간, 회사 사람들과 저녁에 살에 소주 한잔 못해 봤다고 생각해 보세요. 제 기분이 어떻겠어요.”
○인지상정은 통하는 법
외국계 소비재 기업에 다니는 이 과장은 최근 특별한 이벤트 하나를 체험했다. 덴마크 출신 부서장인 A부사장이 전보 발령이 나 다른 나라 지사장으로 가게 됐다. A부사장은 늘상 자신이 덴마크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던 사람이었다. 이 점에 착안해 팀원들은 ‘깜놀’ 환송식을 기획했다. 전 부서원이 덴마크인들의 조상인 바이킹의 모자를 쓰고, 덴마크 국가의 후렴구를 부르며 환송식을 한 것이다.
이에 감명받은 A부사장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고, 아직도 이 과장을 비롯한 팀원들과 연락을 주고받는다. “외국계 회사라고 특별한 의전이 있는 게 아니에요. 어느 나라 사람에게나 진심은 서로 통하는 것 같아요.”
강경민/윤성민/고경봉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