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 시절 안창호·손정도 등과 촬영…홍난파·안익태·김원복 모습도

독립운동가이자 철학, 심리학 등을 국내에 처음 보급한 한치진(韓稚振·1901∼?) 박사의 학문 세계를 본격 조명해줄 수 있는 최고 90년 전의 미공개 사진이 발굴됐다.

미국 콜로라도주 볼더 카운티에 사는 한 박사의 딸 영숙(65) 씨는 한치진 박사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10년 준비 끝에 내달 중순 사진첩을 발간한다고 밝혔다.

그는 28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치진·안창호 등이 상하이(上海)임시정부 시절인 1921년 함께 찍은 사진과 한국인 최초의 미 남가주대(USC) 박사학위(1928·철학) 수여증 등 사진 100여 장을 공개했다.

한영숙 씨는 "어머니(정복희·2004년 작고)가 피난길에도 들고 다니는 등 소중히 간수해 온 미공개 자료들이 대부분"이라며 "독립운동, 해외 유학, 국내 활동 등 아버지의 생애 전반을 보여줌으로써 그의 업적과 생애를 재조명해볼 수 있는 희귀한 자료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관된 평가"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중 상하이 임정 시절 사진은 앞줄 중앙에서 왼쪽으로 백영엽(목사·전 평안북도 지사), 한치진, 안창호 순으로 앉아 있고 백 목사 오른쪽에는 임정 임시의정원 의장 손정도 목사가 자리하고 있어 한치진의 비중을 짐작하게 해준다.

훗날 교육부 장관이 된 김옥길 등 이화여전 학생들이 한치진, 김활란(전 이화여대 재단 이사장) 등 교수들과 함께 금강산 수학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의 경우 등장인물의 절반 이상이 교수직을 역임한 유명 인사라는 게 한영숙 씨의 설명이다.

제7회 조선기독교청년회연합회정기대회(1932.12.29), 제1회 금강산 종교교육대회(1931.7.28), (작곡가 홍난파의 간청으로 넘겨준) '홍파동 집의 울 밑에 선 봉선화', 도쿄음악학원(현 도쿄대 음대) 교정에 선 홍난파·안익태와 '한국 피아노계의 대모' 김원복 전 서울대 교수 등 동문들, (제1세대 소프라노인) '독창회를 마친 정훈모'(이상 1927년)의 모습은 사료로서의 가치가 높아 보인다.

또 독립대표 33인의 일원인 김창준 선생의 주례 사진(한치진-정복희 결혼식), 한치진의 미국행 당시 승선 선박의 갑판(1921), USC가 로스앤젤레스 시내에서 교내로 이전한 도산 안창호 사저, 평양 정의여자보통학교 교정(1924), 1920년대의 도쿄 긴자 거리 등의 모습도 눈길을 끈다.

한 박사는 16세 때 중국으로 건너가 상하이, 장쑤(江蘇)성 난징(南京)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중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미국에서도 독립을 주창하는 삼일신보(三一申報) 창간을 주도, 발기인으로 활동하자 일제는 그를 '민족운동의 급진적인 배일(排日)사상 소유자'로 지목하고 요시찰 인물로 주시했다.

1932년 귀국 후 이화여전 교수가 됐으나 4년 만에 교수직에서 쫓겨났다.

이후 사상범으로 검거돼 서대문형무소에서 수형 생활을 하던 중 1945년 8월 출감했다.

1947년 서울대 교수가 된 그는 한국전쟁 기간(1950.8) 납북될 때까지 '민주주의 원론'을 KBS 라디오로 강의했다.

국가보훈처는 2007년 8월 15일 한치진 박사에게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고 훈장을 한씨 가족에게 전달했다.

한 박사는 철학·논리학·교육학·사회학·윤리·종교 등에 관한 저서 33권과 논문 99편을 출간했다.

'철학이 다루는 거의 모든 분야에 걸친 개설서를 집필한'(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신학문 보급의 기수로 불리는 등 최고 권위의 학자였지만 납북 등의 이유로 학문세계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지 못했다.

한영숙 씨는 한치진의 4남 2녀 중 차녀로 사진첩 발간 준비를 도맡고 있다.

그는 30여 년간 세계적인 패션 회사 데커레이티브(Decorative)의 아티스로로 활동하면서 아카데미 영화상 후보들의 의상을 디자인해왔다.

1990년대 종군 위안부 문제가 불거지면서 국제사회가 일본군의 만행을 규탄하도록 제네바 유엔인권위원회에 호소문을 제출하고 자비로 관련 자료를 수집, 출판하기도 했다.

3남인 한유봉 박사는 최첨단 광학 소재 기술을 보유한 콜로라도주 소재 RMI의 회장으로 1991년 1차 걸프전쟁 때 선보인 패트리엇 미사일 광학 장비를 개발한 물리학자다.

(서울연합뉴스) 홍덕화 기자 duckhw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