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나는 혼자서 잘 운다/울컥, 쏟아지는 눈물을 삼키면서/생각한다 내가 왜 우는지를’(홍윤숙 ‘가끔 나는’ 부분)

기쁠 때든 슬플 때든 눈물 흘리는 순간 인간은 솔직해진다. 세상의 슬픔과 환희도 마찬가지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과 마주하는 순간, 흐르는 눈물은 그래서 무엇보다 시적이다. 시를 쓰는 사람들은 언제 눈물과 마주할까.

계간 ‘시인세계’ 봄호 기획 ‘시인의 눈물-시인은 언제 눈물 흘리는가’에서 홍윤숙 김남조 황금찬 김명인 등 14명이 눈물 나는 삶의 순간들을 고백했다.

86년의 삶에서 슬플 때보다 많이 지쳤을 때 눈물이 치밀었다는 김남조 시인은 “요즘은 햇빛이 내 몸의 살과 뼛속에까지 빛의 미립자를 전해 준다는 생각에 홀연 눈물이 치받곤 한다”고 했다. ‘잘생긴 빛의 세기’가 수천만년 이어져 오면서 생명을 양육해 온 세상은 기적의 보물창고가 아닐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빛의 아름다움에 눈물이 흐르면 시인에게는 어휘들이 분출해 오겠지만, 그는 오히려 이 언어들을 가슴 안에서 잦아들게 한다.

황금찬 시인은 ‘전쟁 속 산 자의 눈물’이라는 글에서 지난날을 회고한다. 6·25 때 종군작가로 근무한 그는 1주일에 두 편의 글을 쓰고 그중 좋은 작품을 피란길 벽에 붙여 놓았다. ‘피란민들이 그 벽보 앞에 서서 끝없는 울음을 한없이 울었다. 우리는 언제 고향으로 가나 하며 한없이 울었다. 앞이 안 보이는 세상을 눈물로 풀고들 있었다. 그것이 1951년의 눈물이었다.’

김명인 시인은 침묵과 눈물을 이어놓는다. 말할 수 없는 것 앞에서 우리는 침묵하고, 또 눈물 흘린다는 것. 둘 모두 일상과 다른 것을 마주하는 신체의 표현이다. 그는 자신의 시 ‘침묵’에서 눈물과 침묵을 하나로 섞는다.

‘분간이 안 될 정도로 길은 이미 지워졌지만/누구나 제 안에서 들끓는 길의 침묵을/울면서 들어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고형렬 시인은 어린 시절에 본 할머니의 눈물을 얘기한다. 그는 전쟁통에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할아버지는 전쟁 중 세상을 뜨고 할머니가 집안 대대로 살던 전남 해남의 집을 지키던 때였다.

‘어느 겨울 새벽 할머니는 이상한 신음 소리를 내며 이남박에 쌀을 씻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울음이란 것을 알아차렸다. 매화나무 아래에서 쌀을 씻던 할머니의 손을 기억하면 내 온몸이 아파온다. 나의 눈물은 얼어붙을 것이고 우리 할머니의 눈물은 얼지 않을 것이다. 오늘도 할머니는 따뜻한 자신의 눈물로 나의 분노와 슬픔을 닦아주신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