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성남에 사는 고성민씨(37)는 2년 전 직장 스트레스로 정신과를 찾아 우울증 약을 처방받았다. 평소 직장에서의 대인관계가 원활하지 않아 밤에 잠을 잘 못자고 우울감을 느껴서다. 상담을 받고 약을 먹었더니 증세가 금세 좋아졌다. 이처럼 가벼운 우울증이었는데도 고씨는 정신과 치료 전력이 있다는 이유로 민간보험사로부터 종신보험 가입을 거부당했다.

앞으로 이런 가벼운 우울증 환자들은 법률상 정신병 환자에서 제외된다. 정신과에서 단순히 상담만 받았다면 진료기록에 정신질환 ‘F코드(정신질환을 가리키는 국제질병분류 기호)’ 치료 기록도 남지 않는다.

보건복지부는 19일 이런 내용을 담은 ‘건강보험 청구절차 개선방안’을 오는 4월 1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임종규 복지부 건강정책국장은 “정신과 치료 전력이 있으면 무조건 심각한 정신병 환자로 낙인찍는 사회 분위기를 바꾸고 불합리한 차별을 없애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오는 4월부터 약물 치료가 없는 단순한 정신과 상담은 병원에서 건강보험 진료비를 청구할 때 정신질환명을 표시하지 않게 된다. 금연상담 등과 같은 ‘일반상담(Z코드)’으로 청구해 소위 ‘F코드’로 불리는 정신질환 낙인을 없애는 것이다.

다만 상담 소견이나 부진단명에는 정신과 전문의의 의료적 판단에 따라 특정 정신질환명이 언급될 수 있다. 복지부는 이와 함께 정신보건법상 정신질환자의 개념을 ‘정신보건전문가가 일상적인 사회활동이 어렵다고 인정하는 사람’으로 한정하기로 했다. 예컨대 환청·망각, 심각한 기분장애 등이 반복돼 입원치료 등을 받는 환자만 중증 정신질환자로 규정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지난해 기준으로 전체 정신질환자(577만명) 중 70~80%에 해당하는 우울증·불안감 같은 가벼운 경증 정신질환자는 정신질환자에서 제외될 것으로 추정한다. 복지부는 정신보건법 개정안을 올 상반기에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가벼운 정신질환자들에 대해서는 의사·약사·영양사·조종사 등의 전문직종 진출 문턱이 없어진다. 현재 국가공무원법·의료법 등 77개 법에서 정신질환자의 면허증·자격증 취득과 취업을 제한하고 있다.

이준혁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