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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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설이 시작되는 건 사실상 섣달 그믐밤부터였다. 온 집안에 불을 환히 밝혀놓고 밤을 새워가며 조왕신을 기다렸다. ‘수세(守歲)’라는 풍습이다. 조왕신이 부엌에서 식구들의 행동거지를 지켜보다가 섣달 스무나흗날 승천해 옥황상제께 고한 후 그믐밤에 다시 온다고 믿었다. 조왕신을 기다리지 않고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고들 했다.
베트남에선 설날 그릇 깨는 걸 금기로 여긴다. 한 해 운이 달아난다고 보기 때문이다. 브라질 사람들은 새해 0시가 되는 순간 노란색 속옷으로 갈아입는다. 저마다 경건하게 설을 맞으려는 마음에서 나온 풍습이다.
중국의 올해 춘제(春節) 귀성 인파는 연 30억명을 넘을 것이라고 한다. 전국 86만대의 버스가 하루 평균 260만회 운행된다. 기차도 수십m씩 줄을 서서 표를 예매한 후 20~30시간씩 타고가는 게 보통이다. 만원 열차 안에서 ‘볼일’을 보기 위해 성인용 기저귀까지 준비한다.
우리의 귀성열기도 그에 못지않다. 꽉 짜인 일상 탓에 서로 잊고 사는 게 흉도 아닌 세상이지만 설날만은 한데 모여 좋은 일, 고달픈 일 함께 나눠야 ‘세월의 매듭’이 지어지기 때문일 게다.
어떻든 찾아갈 곳 있고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큰 위안이다. 고단한 몸, 시름겨운 마음으로 고향집 문을 밀고 들어서면 어른들 얼굴은 환하게 피어난다. ‘까치야 까치야 뭣하러 왔냐/ 때때옷도 없고 색동저고리도 없는 이 마을에/ 이제 우리집에는 너를 반겨줄 고사리손도 없고/ 너를 맞아 재롱 피울 강아지도 없단다….’ 김남주 시인도 설날 아침 날아든 까치에게 왜 왔느냐고 반문하면서도 ‘사랑의 노래나 하나 남겨놓고 가렴’이라고 넌지시 반긴다.
내일이 설이다. 갈수록 아픈 곳 늘어나는 어른들을 보면 마음이 무겁지만 어느새 훌쩍 커버린 아이들이 세뱃돈 받아들고 깔깔대는 모습은 더없이 보기 좋다. 불황에 선물 보따리 가벼워졌어도 가족 친지들이 모여앉으면 잠시나마 시름을 잊고 왁자한 웃음꽃이 피기 마련이다. 살아내기가 버거운 세상 살가운 가족의 정을 느끼는 것보다 더한 푸근함이 있을까. 그래서 막히는 길 마다않고 꾸역꾸역 고향을 찾는 것이다.
‘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또 오는 거지만/ 새해는 그런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세상은/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김종길 ‘설날 아침에’)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베트남에선 설날 그릇 깨는 걸 금기로 여긴다. 한 해 운이 달아난다고 보기 때문이다. 브라질 사람들은 새해 0시가 되는 순간 노란색 속옷으로 갈아입는다. 저마다 경건하게 설을 맞으려는 마음에서 나온 풍습이다.
중국의 올해 춘제(春節) 귀성 인파는 연 30억명을 넘을 것이라고 한다. 전국 86만대의 버스가 하루 평균 260만회 운행된다. 기차도 수십m씩 줄을 서서 표를 예매한 후 20~30시간씩 타고가는 게 보통이다. 만원 열차 안에서 ‘볼일’을 보기 위해 성인용 기저귀까지 준비한다.
우리의 귀성열기도 그에 못지않다. 꽉 짜인 일상 탓에 서로 잊고 사는 게 흉도 아닌 세상이지만 설날만은 한데 모여 좋은 일, 고달픈 일 함께 나눠야 ‘세월의 매듭’이 지어지기 때문일 게다.
어떻든 찾아갈 곳 있고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큰 위안이다. 고단한 몸, 시름겨운 마음으로 고향집 문을 밀고 들어서면 어른들 얼굴은 환하게 피어난다. ‘까치야 까치야 뭣하러 왔냐/ 때때옷도 없고 색동저고리도 없는 이 마을에/ 이제 우리집에는 너를 반겨줄 고사리손도 없고/ 너를 맞아 재롱 피울 강아지도 없단다….’ 김남주 시인도 설날 아침 날아든 까치에게 왜 왔느냐고 반문하면서도 ‘사랑의 노래나 하나 남겨놓고 가렴’이라고 넌지시 반긴다.
내일이 설이다. 갈수록 아픈 곳 늘어나는 어른들을 보면 마음이 무겁지만 어느새 훌쩍 커버린 아이들이 세뱃돈 받아들고 깔깔대는 모습은 더없이 보기 좋다. 불황에 선물 보따리 가벼워졌어도 가족 친지들이 모여앉으면 잠시나마 시름을 잊고 왁자한 웃음꽃이 피기 마련이다. 살아내기가 버거운 세상 살가운 가족의 정을 느끼는 것보다 더한 푸근함이 있을까. 그래서 막히는 길 마다않고 꾸역꾸역 고향을 찾는 것이다.
‘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또 오는 거지만/ 새해는 그런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세상은/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김종길 ‘설날 아침에’)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