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 김현철 씨(58)는 오랫동안 저축은행과 신용협동조합 등 제2금융권에만 예금을 했다. 예금자보호 한도 5000만원에 맞춰 5~6개 금융사를 돌아다니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은행에 가는 것보다 적어도 연 1~2%포인트는 이자를 더 받기 때문에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겼다.

김씨는 올해부터는 이런 수고를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거래 저축은행이나 신협에 가 보니 지난번 만기 때(1년 전)보다 금리가 1.5%포인트가량 떨어졌다”며 “은행 금리나 마찬가지가 돼 버려서 갈 필요가 없어졌다”고 했다. 그는 “요즘 유행한다는 물가연동국채에 투자해 볼까 한다”고 덧붙였다.

◆금리 공식 파괴

금리 공식이 깨지면서 자금시장이 재편되고 있다. 김씨의 사례에서 보듯 예금을 제2금융권에 맡기는 ‘큰손’들은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대형 저축은행들이 잇달아 영업정지를 당하는 통에 불안감이 커진 데다 리스크를 감수할 만한 ‘고금리 매력’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4일 저축은행중앙회에 따르면 전국 저축은행의 1년 예금 금리는 연 2.9~3.8%다.

프라이빗뱅커(PB)들의 역할은 더 커졌다. 이형일 하나은행 PB본부장은 “전에는 은행 예금만으로 돈을 굴리는 자산가도 꽤 있었는데 최근에는 즉시연금이나 채권 등 생소한 분야에 투자하는 경우가 많다”며 “본인들이 익숙지 않다고 판단해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려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반면 서민들은 금리가 낮아서 예·적금만으로 자산을 불리기 어렵게 됐다. 고수익을 기대하려면 그만큼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고, 각종 중위험·중수익 상품에 투자하려 해도 전문적인 금융지식이 부족하다. 따로 자산관리 서비스를 받는 자산가와 서민 간의 금융소득 격차는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은 “저금리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기대수익률을 높이느라 위험도가 높은 상품에 투자하는 서민들이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출시장에서도 금리 격차가 축소되면서 서민이 돈을 빌리기 어려워지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금융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2008년에는 대부업체들이 평균 연 43.1%, 은행은 평균 연 7.19%에 돈을 빌려줬다. 두 금융사 간 금리 격차는 평균 35.91%포인트에 달했다. 2011년에는 19.03%포인트로 확 줄었다. 저금리 탓도 있지만 대부업체 금리 상한선을 강제적으로 낮춘 결과였다. 대부업체 평균 대출금리는 불과 4년 사이 10%포인트 넘게 하락해 연 24.5%로 떨어졌다.

◆금리 대신 서비스로 승부

금융사들도 달라진 시장 상황에 맞는 전략을 새로 짜고 있다. 다이렉트 상품으로 판매비용을 줄여 금리 경쟁력을 확보하거나 금리로 승부를 보기보다는 편리함이나 좋은 서비스 등 금리 외 조건으로 소비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금리로 승부하는 상품은 산업은행의 ‘KDB다이렉트’ 상품이 대표적이다. 수시입출금에도 한도나 조건 없이 연 3.05% 금리를 준다. 어지간한 은행의 1년 만기 예금보다 금리가 높다. 정경훈 산업은행 KDB다이렉트센터장은 “산업은행은 조달 비용이 상대적으로 싸고 점포 수가 82개로 시중은행보다 적어 운영비가 적게 들기 때문에 고금리 수신상품 운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현대캐피탈이 최근 내놓은 다이렉트 신용대출 상품은 최저 금리가 연 5.75%로 은행의 신용대출과 비슷하다.

맞춤형 상품이나 묶음 상품 등으로 금융소비자들을 유인하는 전략도 나온다. 우리은행은 소비자 성향에 맞춰 예금·적금·펀드·보험 등 투자 상품 종류를 바꿔가는 ‘플랫폼 전략’을 도입할 계획이다. 임영학 우리은행 상품개발부장은 “증권사의 엄브렐러 상품이나 랩 상품과 비슷한 개념을 은행에 도입하되 증권처럼 높은 수수료를 받지 않고 맞춤형 상품을 제공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위험·중수익 상품에 대한 투자가 증가하면서 주가연계예금(ELD) 주가연계증권(ELS) 관련 시장도 확대되고 있다.

이상은/김일규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