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자를 부양할 의무를 1순위로 지는 사람은 배우자이고, 부모는 그 다음(2순위)이라는 첫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1차 부양의무자인 배우자 대신 부모가 병원비 등을 대신 내준 경우, 부모는 자식의 배우자를 상대로 이 비용을 청구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3부(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교통사고로 심신이 마비된 아들의 병원비를 부담한 모친 정모 씨(67)가 며느리 허모 씨(41)를 상대로 낸 구상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취지로 파기환송 판결했다고 30일 밝혔다.

재판부는 “민법상 부부는 서로 부양할 의무가 있으므로, 배우자에 대해 1차 부양의무를 진다”며 “반면 부모가 성년의 자녀를 부양할 의무는 그 자녀가 자력으로 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경우에 한해 지원하는 2차 부양의무”라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2차 부양의무자(부모)는 1차 의무자(배우자)보다 후순위로 부양의무를 진다”며 “1차와 2차 부양의무자가 동시에 존재하는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배우자의 부양의무가 우선이기 때문에 부모는 자식 부양에 쓴 비용을 자식의 배우자(며느리, 사위)에게 상환청구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다만 재판부는 “배우자와 같은 1차 의무자가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에만 부양료 상환을 청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정씨의 아들 안모씨는 2006년 11월 교통사고로 수술을 받고 심신이 마비됐는데, 안씨의 병원비로 1억6400여만원이 청구됐다. 안씨의 아내인 허씨가 병원비를 내지 않자 정씨는 병원비를 부담한 후 며느리 허씨를 상대로 8400여만원을 부담하라며 소송을 냈다. 1심과 2심은 부모로써 자식 부양의무를 이행한 것이라며 정씨 패소 판결했다.

대법원 측은 “결혼한 자녀의 경우 배우자가 1차 부양의무자라는 점을 명확히 한 최초의 판결”이라며 “다만 부모가 자녀의 배우자에게 부양하라고 했는데도 배우자가 부양을 거부한 경우 등에 한해 부양료 상환을 청구할수 있고, 부부의 재산상태 등에 따라 상환액이 결정되므로 무조건 부모가 지출한 부양료 전액을 자녀의 배우자로부터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