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통합과 국민행복시대를 기치로 내건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 경제민주화, 복지문제 등이 본격적으로 논의됐지만 상대적으로 외교·안보·대북 문제는 커다란 선거 쟁점으로 부상하지 못했다. 새 대통령은 국내 정치적 아젠다를 제대로 추진해 나가기 위해서는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내치와 외치의 균형 감각이 성공한 대통령의 필수 요건이었다는 것을 역사는 보여준다.

대한민국은 냉전이라는 미·소 패권경쟁기를 거쳐서 21세기 미·중 패권경쟁의 소용돌이 중심에 다시 놓여 있다. 새 대통령은 국익의 관점에서 뚜렷한 전략적 비전을 갖고 미·중 패권경쟁의 거친 파고를 넘고 평화통일을 달성해야 하는 중차대한 시점에 국가운영을 떠맡게 됐다. 한·미 동맹을 강화해 나가면서 동시에 중국과의 경제 관계 심화를 통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공고히 하는 연미화중(聯美和中)의 지혜가 절실히 요구된다.

올해 미·중·일·러시아 등 주변 4강의 지도자들이 모두 교체됐다. 주변 4강의 동북아 및 한반도 정책에 일정한 변화가 자연스럽게 뒤따르게 될 것이다. 주변 4강의 정책 변화를 읽고 대응방안을 모색하는 것도 새 정부의 중요한 외교 과제다. 특히 오바마 2기 행정부는 그동안 대북정책에서 한국 정부의 ‘하청업자(subcontractor)’ 역할을 해왔다는 국내 비판을 의식해 더욱 적극적인 대북정책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아베 정권의 등장에서 보는 것처럼 일본의 우경화와 군사화는 새 정부에 또다른 외교적 난제를 던져준다. 심화되는 중·일 간 영토 분쟁은 새 정부의 운신 폭을 좁게 만들 것이다. 이런 난제들에 직면해 선택을 강요당하지 않고 선택의 폭을 넓혀 나갈 수 있는 지혜와 용기가 새 대통령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이미 선거 기간 중 대북정책의 구체적 방향을 제시한 바 있다. “유화 아니면 강경이라는 이분법적 접근에서 벗어나 균형 잡힌 대북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점을 밝혔다. 과거 정부들의 대북정책들을 정(正), 반(反), 합(合)의 변증법적 인식을 통해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계속 살려 나가겠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읽힌다. 그렇지만 문제는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서 보는 것처럼 북한이 ‘선군정치’(先軍政治)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데 있다. 이런 상황 하에서 ‘봉쇄와 포용’을 적절하게 배합해 북한을 개혁과 개방의 ‘선경정치’(先經政治)로 유도해내기 위한 대북전략이 요청된다.

박 당선인은 선거 공약에서 북한 인권을 향상시키기 위해 북한인권법을 제정하고 국제사회에 열악한 북한 인권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최근 유엔에서 북한 인권 결의안이 표결없이 합의로 처리된 것은 국제사회가 북한 인권 상황을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미 국제사회는 대북 비난 결의안 채택을 넘어서서 북한 내 정치범 수용소에 대한 직접 방문과 조사를 위한 ‘조사위원회’ 구성을 요구하고 있다. 새 정부는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우리 사회와 국제사회 사이에 커다란 갭이 존재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가능한 한 이른 시일 내 북한인권법을 제정해야 할 것이다.

키신저에 따르면 대외정책 결정은 주어진 문제를 제한된 정보를 갖고 제한된 시간 내에 항상 위험 부담을 안고 내리는 전략적 선택이다. 정책 결정 과정에서 선택은 항상 불가피하다. 이 점에서 새 대통령은 트루먼 대통령이 백악관 책상 위에 놓아두었던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the buck stops here)”라는 팻말의 경구를 되새겨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모든 정책결정과정은 ‘리스크 프리(risk-free)’의 영역이 아니라 항상 리스크를 수반한다는 점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제정세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국익을 관철시키기 위해 뚜렷한 전략적 비전과 지혜, 용기 같은 미덕이 새 대통령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김영호 < 성신여대 교수·국제정치 youngho@sungshin.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