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투자하시는 분들 계시죠? 제가 주식으로 돈 버는 비결 하나 가르쳐드리죠.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입니다.(웃음) 주식이 싼지 비싼지 판단하려면 그 기업의 가치를 알아야 합니다. 기업의 가치를 재무제표의 정보를 활용해 계산하는 것을 밸류에이션이라고 하고요. 우리가 이번 시간에 공부할 회계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밸류에이션이라고 하겠습니다.”

KAIST 경영대학 최고경영자과정(AIM) 가을학기 열두 번째 시간. 한인구 KAIST 경영대학 회계·재무학 교수는 투자 의사 결정의 전제 조건으로 회계 정보가 잠재적인 투자자들에게 투명하게 전달돼야 한다고 강조하며 강의를 시작했다.

○기업의 ‘생얼’을 감추는 분식회계

분식(粉飾)은 본래 ‘분칠하여 곱게 화장하다’라는 뜻이다. 분식회계는 회계 정보를 화장하는 것처럼 좋게 꾸미는 것이다. 경영자 또는 오너가 투자자를 끌어들이거나 금융권으로부터 돈을 빌리려고 벌이는 회계 정보 조작이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분식회계를 꼽으라면 2000년 터진 에너지 기업 엔론 사건을 들 수 있습니다. 미국 7대 대기업으로 꼽혔고, 경제 전문지 포천의 표지까지 장식했던 스타 기업이었죠. 나중에 분식회계가 밝혀지면서 당시 세계 회계법인 ‘빅5’의 하나였던 아더앤더슨까지 파산하게 됩니다. 엔론이 분식회계를 하는 동안 아더앤더슨은 그 정보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은 채로 감사의견 ‘적정’을 냈습니다. 적자가 흑자로 둔갑했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엔론이 좋은 회사인 줄 알고 막대한 돈을 넣었죠. 분식회계와 부실 감사가 밝혀지면서 투자자들이 줄소송을 제기했고, 결국 두 회사 모두 사라졌습니다.”

당시까지 전 세계에서 가장 금융시장이 투명하고 발달했다고 자부해왔던 미국은 엔론 사태로 큰 충격에 빠졌다. 기업의 업무와 거래, 커뮤니케이션, 기타 모든 종류의 비즈니스에 대한 감시 시스템 확립과 회계 조작을 주도한 경영자에 대한 형사 처벌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사베인즈-옥슬리 법이 제정됐다. 이 법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국가들의 회계 정책에 반영됐다. 한국도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증권거래법, 공인회계사법 등에 주요 내용이 들어갔다.

○‘이익 관리’도 원칙적으로 규제

회계 조작의 중추가 되는 부분은 이익이다. 기업의 가치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가 매출에서 각종 비용과 세금을 뺀 순이익이기 때문이다. 기업 경영자들이 조작의 유혹을 가장 많이 느끼는 부분도 순이익이다.

“예전에는 ‘이익 관리’라는 것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베인즈-옥슬리 법 이후에는 경영자가 이익 관리를 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제한받고 있습니다. 경영자는 이익을 관리하는 것보다는 경영 성과를 투명하게 보여줘야 하고, 비용 절감이나 마케팅, 품질 관리 등에 더 집중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한 교수는 이어 ‘대리인 이론’을 소개했다. 대리인 이론은 기업의 주인은 주주이며, 주주가 대리인으로서 경영자를 고용했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하기 때문에 대리인인 경영자 역시 본인의 이익을 추구한다. 따라서 경영자에게 충분한 보상(인센티브)을 줘야 일을 열심히 해서 기업을 키운다는 것이다.

“경영진이 일을 열심히 했는지 확인하는 방법은 실적이죠. 경영자 입장에선 실적이 좋지 않으면 분식 회계를 하려는 유혹을 강하게 느끼게 됩니다. 또 경영자가 횡령을 할 경우에도 분식이 따라가게 됩니다. 돈을 빼돌리고 나서 그만큼 있지도 않은 자산에 투자했다고 재무제표에 써놓는 것이죠. 은행의 대출 회수 압박을 받는 기업들 역시 기업이 튼튼하다고 보여주기 위해 분식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정치적 비용도 이익 관리 요인

이익을 줄이는 분식회계도 있다. 정치적인 비용이 많은 기업들, 즉 이익이 많이 나면 비난을 받는 기업들이 이익 감소 분식회계를 하는 경우가 예전에 종종 있었다는 것이 한 교수의 설명이다.

“삼성전자가 작년에 영업이익 17조원을 거뒀죠. 그걸 두고 ‘왜 애플로부터 부품값을 비싸게 받았나’라고 비난하는 사람들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정유회사나 통신회사는 부담을 가집니다. ‘내수로 돈 번다’는 인식이 있는 기업들이죠. 예전엔 한국전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익이 많이 나면 바로 전기료를 내리라는 압박을 받았죠. 정유사나 통신사, 또 독과점적인 위치를 갖고 있는 기업 등은 이익을 많이 내면 소비자에게 부담이 된다는 이유로 정부가 감시에 들어갑니다. 국민 여론이 안 좋게 형성되는 경우도 있죠. 이렇게 정치적인 비용이 큰 기업들은 이익을 줄이려는 유인을 갖고 있습니다.”

정치적 비용이 없다고 해도 많은 기업들이 이익을 지나치게 많이 내려고 하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 주주들이 다음 해에 더 많은 이익을 내길 기대하기 때문이다. 경영자가 오래 자리를 유지하는 길은 이익이 매년 조금씩 성장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이익 조정을 분식 회계로 해선 안 되겠죠. 다른 방법도 많이 있습니다. 이익이 너무 많이 날 것 같으면 광고비를 늘리거나 연구·개발(R&D), 임직원 교육비 등의 비용을 늘리면 되죠. 또 이익이 너무 작을 것 같으면 이 비용들을 줄일 수도 있습니다. 이 정도는 합리적인 경영 판단으로 볼 수 있는 수준이죠. 흔히 ‘빅 배스(big bath·목욕)’라 불리는 부실 떨어내기도 이익 조정의 일종입니다. 금융회사가 부실 자산에 대해 대손충당금을 쌓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주로 최고경영자(CEO)가 바뀌면 이런 작업이 잘 일어납니다. 대손충당금을 많이 쌓으면 이익이 줄거나 손실이 커지는데, 이것을 전임자 책임으로 돌릴 수 있고 자신은 다음 해에 이익을 내기가 쉽기 때문이죠. 또 세계적인 경기침체 등으로 주주들이 좋은 실적을 기대하지 않을 때 부실 떨어내기가 자주 나타납니다.”

○기업의 공용어, 국제회계기준(IFRS)

“200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세계 각국은 각자의 회계 기준을 적용해왔습니다. 주식 시장이 있는 나라가 100개도 넘지만, 투자가 보통 자국 내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나라마다 다른 회계 기준을 써도 크게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죠. 회계 기준을 단일화하자는 이슈는 2000년대 들어 부상하기 시작합니다. 자국보다 낮은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나라를 찾아 기업이 이동하면서, 상품뿐 아니라 파이낸싱(자금 조달)에도 국경이 사라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삼성전자는 미국에도 상장돼 있고, 영국이나 싱가포르에서 자금을 조달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국내 기업이 해외에 상장하려면 국내 회계기준이 아니라 해당 국가의 회계기준에 맞춰 그 나라의 공인회계사가 작성한 재무제표가 필요하다. 여러 국가에서 자금을 조달하려면 각 나라에 맞는 재무제표를 그때그때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시간과 비용이 계속 늘어나게 된다.

“국제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 영어가 필수적인 것처럼, 기업을 설명하는 언어인 회계도 통일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계속 힘을 얻게 됐습니다. 특히 나라마다 다른 기준을 쓰던 유럽연합(EU)이 주도해서 2005년 국제회계기준(IFRS)을 만들게 됩니다. 한국 기업이 IFRS에 따라 재무제표를 만들면 다른 나라에 가서 그 재무제표를 그대로 쓸 수 있는 것이죠. 미국도 아직 독자적인 회계기준을 쓰고 있지만, 외국 기업이 IFRS에 따라 작성한 재무제표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IFRS는 기업의 ‘실제 가치’를 반영

미국은 계속 독자적인 회계기준을 쓰다가 IFRS를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으며, 2014년에는 미국 기준과 IFRS를 통합할 예정이다. 두 개의 회계 기준을 써야 하는 외국 기업이나 투자자들이 빠져나갈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 이유다. 일본도 아직 독자적인 회계 기준을 쓰고 있지만, 외국 기업이 IFRS에 의해 작성한 재무제표도 인정하고 있다. 그 밖의 대부분 국가들은 IFRS를 사용하거나, 사용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IFRS 도입 이전 한국 회계기준은 법적인 효력을 갖는 기본 재무제표로 개별재무제표를 사용했다. 하지만 IFRS 도입 이후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자회사들까지 포함하는 연결재무제표를 쓴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투자 유치나 대출 심사가 개별 기업별로 이뤄졌지만, 이제는 자회사들의 상태까지 보게 된 것입니다. 똘똘한 자회사가 있는 기업들은 좋은 조건으로 투자를 받을 수 있는 반면, 부실한 자회사가 있는 기업들은 부실을 숨길 수가 없어진 것이죠.”

자산의 가치를 평가할 때도 예전에는 ‘원가’라는 객관적인 값으로 매겼다. 100억원에 산 토지가 시가 500억원으로 올랐다고 해도, 예전 회계기준으로는 100억원의 가치만 인정됐다. 하지만 IFRS는 자산을 ‘공정 가치(시장 가치)’로 판단한다. 토지 가격이 오르면 오른 값으로 평가받는 것이다.

“예전에 원가로만 평가했던 이유는 가장 객관적인 정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공정 가치로 평가하면 경영진의 분식 유혹이 커진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실제로 IFRS 도입 이후 회계 투명성이 오히려 높아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습니다. 또 회계 정보가 기업의 주가를 더 잘 반영한다는 조사도 속속 발표되고 있습니다. 회사의 자산을 시장 가치로 평가하기 때문에 밸류에이션이 더 정확해진다는 것이죠. 기존 회계기준이 세세한 부분 하나하나에 대해 모두 규칙으로 정하는 규칙 중심이었다면, IFRS는 원칙만 주고 경영자의 판단에 의존하라는 원칙 중심이라는 것도 다른 점입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

강의 = 한인구 <KAIST 경영대학 회계·재무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