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이명재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던 천안함 CCTV 데이터 살려냈죠"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국가 재난의 진상을 꼭 밝혀내야 한다는 사명감과 오기로 밀어붙였습니다.”

데이터 복구업체 명정보기술의 이명재 사장(55)에게 천안함 폭침 사건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2010년 3월 북한의 천안함 공격으로 해군 장병 40명이 목숨을 잃고 6명이 실종당하는 참사의 진상을 밝힌 이가 이 사장이기 때문이다. 그가 천안함의 폭침 시점을 밝혀내면서 국내외 기관과 업체들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 올해 매출은 지난해보다 45% 정도 급증할 전망이다.

이 사장은 올 연말에 뜻깊은 상을 받았다. 한국무역협회·지식경제부·한국경제신문이 공동 선정한 ‘2012년 한국을 빛낸 올해의 무역인’으로 뽑혔기 때문이다. 이 상은 매달 2명씩 선정하는 ‘이달의 무역인’ 가운데 수출 기여도가 가장 큰 기업인에게 주어진다. 한국의 정보 보호와 보안 기술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기술 강소기업’의 면모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올해의 무역인상’ 수상을 축하합니다.

“과분한 상인 것 같습니다. 수출 규모가 더 큰 중소기업들도 많지만 한 해 동안 좋은 결과가 있었던 것에 대한 칭찬과 격려라고 생각합니다. 또 우리나라 무역인들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는 의미에서 주어진 상이라고 봅니다. 그동안은 제품 중심의 수출이 주를 이뤘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독일과 일본처럼 기술 수출 강국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취지에서 제게 큰 선물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수출액이 지난해보다 크게 늘어날 예상이라는데.

“올해는 명정보기술이 기술력을 널리 인정받은 한 해였습니다. 특히 미궁에 빠질 뻔한 천안함 사건의 진상을 밝혀냈다는 입소문이 난 게 결정적이었습니다. 2010년 링스헬기 추락 사고 원인을 파헤치고 국가정보원과 경찰청 사이버수사대 등에서 데이터 복구팀을 창설하는 데 일조한 사실도 함께 알려져 확산 효과가 컸던 것 같습니다. 이를 통해 미국 최대 저장장치 업체인 시게이트로부터 ‘데이터 복구 업무 전체를 맡아 달라’는 요청을 받고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또 말레이시아 정부에 45만달러를 받고 데이터 복구 기술을 이전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일본, 태국, 인도 데이터 복구 업체들에도 기술 수출을 하게 됐습니다.”

▷천안한 피격 사건 규명 작업은 어땠나요.

“천안함이 피격당한 뒤 침몰 원인을 둘러싸고 갖은 의혹들이 제기됐고, 자작극 논란까지 일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방부 합동조사반이 천안함 내부 CCTV 영상이 있는 컴퓨터 데이터를 복원해 달라고 긴급 요청을 했죠. 하지만 곧 낙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손에 쥐어진 것은 45일동안 바닷물 속에 잠겨 소금물과 뻘이 엉켜 있는 컴퓨터였기 때문이죠. 흙을 털어내고 하드디스크드라이브를 분리했지만 알루미늄 원판이 하얗게 부식된 상태였습니다. 외국 전문가들은 이를 보고 복원이 어렵다고 했죠.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중견 엔지니어들을 중심으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밤샘 작업에 매달렸습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죠. 침몰 이전 사병들이 교대근무를 하는 모습, 체육 활동을 하는 모습을 복원했습니다. 이 영상을 통해 자작극 논란이 잦아들었고 천안함 폭발 시점이 밝혀졌습니다.”

▷누구보다 기술 수출을 강조하시는데요.

“독일이 유럽 재정위기의 한파에서 벗어나 있는 것은 기술 수출 역량이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일본 역시 장기 불황 속에서도 지금까지 버틸 수 있는 것은 기초 기술을 탄탄하게 뿌리내린 덕분입니다. 우리나라는 2년 연속 무역 1조달러를 달성했지만 기술 수출 분야에서는 많이 뒤처집니다. 남들이 잘 하지 못하는 기술을 확보하고 이를 무기로 해외 시장을 공략해야 진정한 무역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기술 수출은 경기 흐름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최근 전 세계에 불어닥친 불황 때문에 상당수 국내 제조업체들이 타격을 입고 있습니다. 반면 기술 수출을 주로 하는 업체들은 협상만 원만히 진행하면 수출 계약을 쉽게 맺을 수 있습니다.”

▷데이터 복구 시장은 얼마나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나요.

“정보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데이터 복구 시장 역시 대폭 커질 것으로 봅니다. 개인은 물론 기업에서도 회계 자료 등 수많은 정보를 컴퓨터로 처리하지 않습니까. 데이터 복구 사업은 컴퓨터 종합병원을 운영하는 것과 같습니다. 몸이 아프면 종합병원을 찾듯 컴퓨터에 이상이 생겨 자신의 소중한 데이터가 사라질 위기에 처하면 누구나 비용을 크게 신경쓰지 않고 데이터 복구 업체에 손을 내밉니다. 이미 명정보기술에만 하루에 100건이 넘는 의뢰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매년 2만5000여건의 데이터 복구 작업을 하느라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

▷밀려드는 주문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많은 직원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결하고 있습니까.

“우리 회사 역시 다른 중소기업처럼 인력난이 심각했습니다. 하지만 고졸 채용을 대폭 확대해 이를 해소하고 있습니다. 현재 고졸 출신 직원이 전체 직원의 30%가 넘습니다. 회사 업무 중 대학을 나와야만 할 수 있는 일은 20%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학벌을 지나치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이는 인력난을 심화시키고 회사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고졸 채용이 늘어나곤 있지만 여전히 꺼리는 업체들이 많습니다.

“학력이 아닌 실력만 있다면 얼마든지 멋진 미래를 만들 수 있습니다. 저 역시 그런 경우입니다. 1976년 경북 구미에 있는 금오공고를 졸업하고 군대에 다녀온 후 1982년 미국 반도체장비 회사인 AMK에 생산직으로 취업했습니다. 출근 시간은 오전 9시였는데 매일 두 시간 먼저 나와 독학했습니다. 하드디스크드라이브에 대한 미국 원서를 찾아 일일이 베껴 쓰며 공부했습니다. 배워야 할 신기술이라면 미국까지 건너가 관련 업체를 찾기도 했습니다. 외국인이 불쑥 찾아와 기술을 배우겠다고 하니 거절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끊임없이 도전을 거듭해 실력을 쌓았습니다. 이를 통해 입사 3년 만에 엔지니어로 발탁됐고 매년 진급할 수 있었습니다.”

▷창업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1990년 AMK가 인건비 상승 등을 이유로 한국 시장에서 철수하고 말레이시아로 생산공장을 이전했습니다. 고민 끝에 그동안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창업에 나섰습니다. ‘디지털’이란 용어조차 생소했던 시절이지만 컴퓨터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할 것으로 예상하고 용기를 냈습니다. 처음엔 하드디스크드라이브 수리 사업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컴퓨터 속 자료를 복원해달라는 요청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중요한 정보가 저장돼 있으니 이를 되살려주기만 한다면 비용은 얼마든지 주겠다고 하더군요. 데이터 복구 시장의 잠재력이 무궁무진할 것으로 판단해 1993년 데이터 복구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데이터 복구 외에도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는데요.

“액정표시장치(LCD) 수리를 하고 있습니다. LCD패널이나 회로가 손상되면 이를 고쳐 재생산하는 것입니다. 현재 삼성과 LG 등 국내 대기업에 수리 및 교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2004년 국내 최초로 개발한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도 판매하고 있습니다. SSD는 데이터를 빠른 속도로 기록하고 읽을 수 있는 저장장치로 저희는 주로 산업체 특수용 SSD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다음 계획은 무엇입니까.

“데이터 복구 분야의 ‘대명사’가 되는 것입니다. 현재 국내 시장에선 50%가 넘는 점유율로 선두를 달리고 있습니다. 앞으론 해외 시장을 더욱 공략해 세계 최고의 정보기술 서비스 회사가 되겠습니다. 미국과 일본에 지사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으며 다른 나라로도 확대할 계획입니다. 중국 쑤저우에 지점을 세우고 현지 공장을 추가 증설하고 있습니다. 기술 개발 투자도 더욱 늘릴 예정입니다. 올해 매출은 지난해보다 45% 정도 늘어난 450억원에 달하고 2~3년 후에는 10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명재 사장은 고졸 출신 최고경영자…1993년 데이터 복원 시작

1957년 충북 괴산에서 태어나 1976년 구미에 있는 국립 금오공고를 졸업했다. 군 복무 후 미국 반도체장비 업체인 AMK한국법인에 생산직으로 입사, 기름때 먹으면서 생산 기술을 익혔다. 경영진이 그를 눈여겨보고 수리 부문 엔지니어로 발탁하면서 경영에도 눈을 떴다. 이후 하드디스크드라이브 수리 사업을 직접 제안해 담당 업무를 총괄했다.

1990년 AMK가 한국에서 철수하자 그는 충북 청주에 회사를 설립, 사업을 이어갔다. 명정보기술의 주력은 데이터 복원 사업. 1993년 아시아 최초로 이 사업에 뛰어든 뒤 20년간 30만건 이상을 처리했다. 창업 당시에는 직원이 3명뿐이었지만 현재는 280명에 달한다.

그는 자신의 고향이자 본사가 있는 충북지역 발전을 위해서도 적극 나서고 있다. 2003년 충북 오창과학산업단지로 본사를 옮긴 뒤 단지 운영을 담당하는 관리공단 이사장을 맡아 단지가 빠르게 자리잡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창단지를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만드는 게 꿈이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