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내년 투자를 올해보다 20~30% 축소할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불황으로 반도체 수요가 살아나고 있지 않아서다. 무엇보다 일본엘피다의 파산으로 과열 경쟁이 완화되면서 치킨게임의 압박에서도 그만큼 자유롭게 됐다. 삼성전자에 이어 SK하이닉스도 투자를 줄이게 됨에 따라 내년 반도체 시장은 공급 감소에 따라 가격이 안정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내년도에 3조원 내외를 투입하는 내용의 투자계획을 최근 잠정 확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올해 투자액 4조원에 비해 20~30%가량 줄어든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D램 값이 올해 내내 약세를 보여온 데다 지난 8월부터 오름세를 탔던 낸드플래시 가격도 최근 추세가 꺾였다”며 “SK하이닉스도 삼성과 마찬가지로 내년에 보수적인 투자계획을 세운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올초 0.88달러까지 떨어졌던 D램(DDR3 2Gb 기준) 고정거래가격은 엘피다 파산을 계기로 지난 5월 말 1.17달러까지 오르기도 했지만, 이후 PC 시장의 위축으로 다시 떨어져 지난 13일 현재 0.81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스마트폰 등에 쓰이는 낸드플래시(64Gb 8Gx8 MLC) 고정가격도 지난 6~9월 3달러대까지 추락했다가 아이폰5 출시 등에 힘입어 10월 말 5.52달러까지 반등했지만, 최근엔 4달러 후반에서 횡보하고 있다.

이에 따라 SK하이닉스는 지난 6월 말 준공한 청주 M12라인을 내년에도 현 수준인 월 4만장(30㎝ 웨이퍼 기준) 규모로 운영키로 했다. M12라인은 20나노미터(㎚)급 낸드와 D램을 만드는 혼용 라인으로 최대 월 12만장 생산 규모로 건설됐지만, 반도체 시황 악화로 풀가동을 하지 않고 라인의 30%에만 장비를 설치하고 가동 중이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내년 투자계획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반도체 시황이 본격 호전되기 전에는 추가 투자를 미루고 현 수준에서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규 라인 투자 대신 미세공정 전환 등 원가경쟁력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얘기다. 이 관계자는 “내년에 M12라인에 들어갈 장비를 발주하지 않고 미세공정 전환 및 기존 라인 보수 위주로 투자할 경우 2조원대 투자비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는 당초 올해 4조2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었으나, M12라인의 장비 발주를 줄여 투자액은 4조원에 그칠 전망이다. 3분기 말 누적 투자액은 3조5600억원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6월 짓기 시작한 경기도 화성의 17라인(시스템반도체) 공사를 최근 중단했다. 또 9월 착공한 중국 시안의 낸드플래시 메모리 공장도 양산시기를 당초 예정보다 소폭 늦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동수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장은 최근 “내년 시황이 좋지 않은 것은 인지된 사실이어서 투자 규모를 보수적으로 잡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메모리 업계 1, 2위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투자를 축소할 경우 메모리 반도체의 내년 생산량은 당초 예상보다 줄어들 전망이다. 서원석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내년 메모리 공급량이 예년에 못 미치는 20~40% 증가 수준에 그친다면 오히려 반도체 값이 안정되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