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원하는 법관상을 만족시킬 만한 능력이 없다고 판단되면 언제라도 물러나겠다는 비장한 각오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10일 오전 10시부터 열린 신임 경력 법관 24명 임명식에서 양승태 대법원장은 짧은 환영사에 이어 긴 우려의 말을 내놓았다. 양 대법원장은 “풍부한 법적 지식과 비상한 두뇌를 가졌다고 하여 국민이 법관에게 바라는 자질과 덕목을 다 갖춘 것이 결코 아니다”며 “법관이 됐다는 기쁨을 느끼기에 앞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으리라 믿는다”고 운을 뗐다. 양 대법원장은 “건전한 상식과 보편적 정의감에 기초한 법관의 양심을 따라야지, 자기 혼자만의 독특한 가치관이나 고집스럽고 편향된 시각을 양심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서는 안 된다”는 당부도 했다.

이날 임명받은 24명은 변호사와 검사 경력 5~10년인 중견 법조인이지만 대법원장의 노파심은 끝간 데 없어 보였다. 잇따른 비리 의혹으로 검찰총장까지 옷을 벗은 ‘옆동네(검찰)’의 소란이 남의 일 같지 않다는 생각에서일 게다. 판사들의 ‘못된 짓’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절도 혐의 여성 피의자와 성관계를 가진 ‘성검사’ 사건에 묻혔지만 지난 9월 지방법원의 모 부장판사가 회식 자리에서 법원 직원을 성추행했다가 사직한 일이 발생했다. 현직 판사가 지하철에서 20대 여성을 성추행했다가 옷을 벗은 게 지난해 4월의 일이다. 대법원장도 검찰총장처럼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할 것 같지만, 아직까지 아무런 말이 없다.

대법원장의 축사가 끝난 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은 같은 날 오전 11시, 서울 서초동 대법원 옆 대검찰청 앞에서 서기호 진보정의당 의원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서 의원은 전관예우뿐만 아니라 현직 검사 등 ‘현관예우’도 금지해야 한다며 변호사법 개정안을 발의한다고 했다. 현직 검사가 수사 중인 사건의 피의자를 변호사인 매형의 법무법인에 소개해주는 따위의 브로커 행위를 근절하겠다는 취지다. 그는 그러면서 재판에 종사하는 판사도 친족관계에 있는 변호사에게 사건 수임을 소개·알선해서는 안 된다며 ‘친정’인 법원을 겨냥했다. 전직 판사인 서 의원은 양 대법원장이 판사 성적 부진과 부적절한 언행으로 재임용을 거부한 주인공이다. 법조계가 그런 사람에게서 ‘훈수’를 듣고 있다.

이고운 기자 지식사회부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