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뒤끝작렬 팀장의 '집요한 수사'…"너희가 감히 C를 줘!" 옥상 집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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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철 사무실 풍경…다면평가 비밀보장 믿은게 죄…
평소에 이렇게 좀 하지
야근·회식·지방근무도 솔선수범…세상 어디에도 없는 '열성 일꾼'
친구도 가려 만나라
경쟁사 동창 만났을뿐인데…자네 이직하나? 싸늘한 시선
알아도 모르는 겁니다
연말만 되면 甲이되는 인사팀…정보력 과시하다 '팽' 당하기도
평소에 이렇게 좀 하지
야근·회식·지방근무도 솔선수범…세상 어디에도 없는 '열성 일꾼'
친구도 가려 만나라
경쟁사 동창 만났을뿐인데…자네 이직하나? 싸늘한 시선
알아도 모르는 겁니다
연말만 되면 甲이되는 인사팀…정보력 과시하다 '팽' 당하기도
때가 왔다. 결재만 올리면 쉰내 날 정도로 묵히기 일쑤인 팀장도, 눈치 없이 먹성만 좋은 만년 과장도, 자기 일 외엔 관심도 없는 깍쟁이 대리까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열성 일꾼’이 되는 시즌. 바로 인사철이다.
그러나 아무리 사무실과 골프장에서 ‘행쇼(행복하십쇼)’와 ‘부나샷(부장님 나이스 샷)’을 외친다 해도, 평가할 때 만큼은 피도 눈물도 없이 냉정해져야 하는 법. 웃는 이가 있다면 누군가는 한쪽에서 눈물을 떨굴 수밖에 없다. 인사평가로 매사가 조심스러워지는 요즘, 김과장 이대리들의 사무실 풍경을 들여다봤다.
○코러스에 백댄서도 마다하지 않는다
경력직으로 들어온 이 과장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회식자리다. 모여서 밥 먹는 것까지는 좋지만, 술자리로 이어지면서 돌고 도는 술잔에 담배 냄새는 정말 끔찍하다. 무엇보다 늦어지는 귀가시간 때문에 친정 어머니가 잠깐 봐주고 있는 아이가 신경 쓰인다. 하지만 이 과장은 매년 이맘때면 이미지 변신 작업에 들어간다. 팀 회식에 절대 빠지지 않고 폭탄주 제조도 자처한다. 지난주엔 1차 고깃집, 2차 호프집에 이어 3차 노래방까지 따라갔다. 팀장이 애창곡을 부를 때면 감칠맛 나는 코러스에, 탬버린 도우미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다. 인사평가가 진행 중이라는 것을 알기에 팀원들과 늘 잘 어울리는 화합형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쓰린 속을 달래며 마이크를 잡고 오버를 한다.
○서러운 ‘만년’ 타이틀
8년째 승진을 못하고 있는 김 과장은 연말 인사에서 ‘만년 과장’ 꼬리표를 떼기 위해 큰 결심을 했다. 입사 후 줄곧 서울 본사에서 근무했던 그는 지난달 광주에 있는 지사로 근무지 이전을 신청했다. 아내와 아이들을 두고 떠나야 하는 데다 지방에서 살아본 적도 없는 김 과장이 ‘전격 이전’을 하게 된 것은 물론 ‘승진’ 때문이었다. 지방 근무 인원이 모자라 애를 먹던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지방 근무 시 승진을 약속한 것이다. “언제까지 과장으로 늙을 수는 없잖아요. 승진만 된다면 주말 부부도 감수해야지 어떻하겠습니까.”
총무팀 고참 김 차장은 이맘때만 되면 인사팀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가 된다. 자신이 근무하는 5층을 가기 위해 평소에는 엘리베이터를 탔지만, 요즘은 1층부터 걸어 올라간다. 내려갈 때도 계단을 이용한다. 그러면서 4층에 있는 인사팀을 슬쩍 지나가면서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이다. 물론 오가다 인사팀원들을 보면 ‘완전 흐뭇한’ 미소로 인사를 건넨다. 거의 끝물이 돼버린 진급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김 차장의 눈물나는 다리품팔이다.
○네가 감히 C를 줘?
중견기업에 다니는 김 대리는 올해 처음 다면평가란 걸 해보게 됐다. 항상 평가를 받기만 하다가 동료와 윗사람을 평가하라고 하니 의외로 부담스러웠다. 시스템상 익명성이 보장되니 눈치보지 말고 평가를 하라는 인사팀 담당자의 말에 그대로 따랐다. 그런데 웬걸. 평가 마감기간이 지난 며칠 후, 팀장이 직원 몇몇을 옥상으로 집합시켰다. “그렇게 불만이 많으면 평소에 얘기하지 이런 식으로 뒤통수 치나. 다면평가 한다니까 정의감과 양심이 샘솟냐.” 인사팀 담당자 말과는 달리 다면평가는 평가대상에 대한 추적이 가능했고 팀장은 인사팀에 절친한 동기가 있어 ‘회사판 CSI’를 가동했다. 이후 김 대리의 직장 생활이 어땠을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튀면 밟힌다
동기들보다 승진이 빠른 박 부장은 올해 인사평가를 앞두고 근거 없는 소문의 희생양이 됐다. 사내 익명 게시판에 ‘P부장 바로알기’라는 제목의 글이 떴다. 이름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업무 내용이나 인물 묘사를 보면 누가 봐도 당사자는 박 부장 본인이다. 거래처 관계자를 만날 때 일부러 비싼 술집을 가고 3차까지 내게 한다거나, 팀 회식을 할 때 여직원들에게 수위 높은 성희롱 발언을 한다는 식이다. “투서는 임원 인사 때나 있는 것으로 들었는데, 겨우 부장인 제가 표적이 될 줄은 몰랐죠. 억울하지만 익명게시판에 ‘난 그런 적 없다’고 해명하는 게 더 웃길 것 같아 그저 속만 끓이고 있습니다.”
○밥자리도 가려서 해라
김 대리는 작년 이맘때 회사 주변에서 지인과 저녁을 먹었다가 곤욕을 치렀다. 지인은 김 대리의 입사동기로, 입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경쟁회사로 옮겼다. 그날도 대수롭지 않게 그와 회사 근처에서 밥을 먹고 맥주를 한잔했다. 그런데 다음날 출근하자 사무실 분위기가 싸늘했다. 김 대리가 경쟁사 직원과 함께 있는 것을 본 회사 동료들이 그가 이직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을 낸 것이다. “그나마 받아줄 생각이 있는 곳이라면 억울하지도 않죠. 그렇잖아도 민감한 인사 시즌에 그런 소문이 퍼졌으니.” 그 후로 김 대리는 그 친구와 회사 주변에서는 절대 만나지 않는다.
○먼저 알면 뭐가 바뀌나
지난 5월 인사부로 발령난 이 차장은 요즘 쉴 새 없이 울려대는 휴대폰 문자 알림 소리가 귀찮을 정도다. 문자 내용은 대개 ‘오늘 저녁에 약속 없으면 소주나 한잔하자’며 직장 선후배들이 보낸 것이다. 물론 속셈은 따로 있다. “별 생각 없이 만나면 대부분 슬쩍 인사 얘기를 꺼냅니다. 승진을 기대하고 있거나 부서 또는 근무지를 옮기고 싶은 선후배들이 연말 인사 동향을 묻는 것이죠.” 특히 부서장이나 담당 임원이 바뀔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새로 올 상사가 누구일지에 대한 관심이 대단히 크다. 이 차장과 ‘약속 잡기’가 회사 사장님을 만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이유다.
‘마당발’ 안 차장은 평소 부서에서 인사통으로 불린다. 남다른 사내 정보망을 가동한 그의 인사 정보는 정확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인사철만 되면 안 차장의 주변에는 인사 정보를 캐내려는 사람들로 들끓는다. 지난해 인사 때도 안 차장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인사통 역할을 하느라 바빴다. 인사가 발표되는 오후 3시. 안 차장은 본인의 정보가 얼마나 적중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사내 인트라넷 게시판에 접속했다. 아뿔싸, 본인이 다른 부서로 발령난 것이었다. 본인은 인사 대상이 아닌 줄로만 알던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그후론 안 차장은 다시는 인사 얘기를 떠벌리지 않는다고 한다.
윤정현/김일규/강경민 기자 hit@hankyung.com
그러나 아무리 사무실과 골프장에서 ‘행쇼(행복하십쇼)’와 ‘부나샷(부장님 나이스 샷)’을 외친다 해도, 평가할 때 만큼은 피도 눈물도 없이 냉정해져야 하는 법. 웃는 이가 있다면 누군가는 한쪽에서 눈물을 떨굴 수밖에 없다. 인사평가로 매사가 조심스러워지는 요즘, 김과장 이대리들의 사무실 풍경을 들여다봤다.
○코러스에 백댄서도 마다하지 않는다
경력직으로 들어온 이 과장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회식자리다. 모여서 밥 먹는 것까지는 좋지만, 술자리로 이어지면서 돌고 도는 술잔에 담배 냄새는 정말 끔찍하다. 무엇보다 늦어지는 귀가시간 때문에 친정 어머니가 잠깐 봐주고 있는 아이가 신경 쓰인다. 하지만 이 과장은 매년 이맘때면 이미지 변신 작업에 들어간다. 팀 회식에 절대 빠지지 않고 폭탄주 제조도 자처한다. 지난주엔 1차 고깃집, 2차 호프집에 이어 3차 노래방까지 따라갔다. 팀장이 애창곡을 부를 때면 감칠맛 나는 코러스에, 탬버린 도우미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다. 인사평가가 진행 중이라는 것을 알기에 팀원들과 늘 잘 어울리는 화합형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쓰린 속을 달래며 마이크를 잡고 오버를 한다.
○서러운 ‘만년’ 타이틀
8년째 승진을 못하고 있는 김 과장은 연말 인사에서 ‘만년 과장’ 꼬리표를 떼기 위해 큰 결심을 했다. 입사 후 줄곧 서울 본사에서 근무했던 그는 지난달 광주에 있는 지사로 근무지 이전을 신청했다. 아내와 아이들을 두고 떠나야 하는 데다 지방에서 살아본 적도 없는 김 과장이 ‘전격 이전’을 하게 된 것은 물론 ‘승진’ 때문이었다. 지방 근무 인원이 모자라 애를 먹던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지방 근무 시 승진을 약속한 것이다. “언제까지 과장으로 늙을 수는 없잖아요. 승진만 된다면 주말 부부도 감수해야지 어떻하겠습니까.”
총무팀 고참 김 차장은 이맘때만 되면 인사팀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가 된다. 자신이 근무하는 5층을 가기 위해 평소에는 엘리베이터를 탔지만, 요즘은 1층부터 걸어 올라간다. 내려갈 때도 계단을 이용한다. 그러면서 4층에 있는 인사팀을 슬쩍 지나가면서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이다. 물론 오가다 인사팀원들을 보면 ‘완전 흐뭇한’ 미소로 인사를 건넨다. 거의 끝물이 돼버린 진급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김 차장의 눈물나는 다리품팔이다.
○네가 감히 C를 줘?
중견기업에 다니는 김 대리는 올해 처음 다면평가란 걸 해보게 됐다. 항상 평가를 받기만 하다가 동료와 윗사람을 평가하라고 하니 의외로 부담스러웠다. 시스템상 익명성이 보장되니 눈치보지 말고 평가를 하라는 인사팀 담당자의 말에 그대로 따랐다. 그런데 웬걸. 평가 마감기간이 지난 며칠 후, 팀장이 직원 몇몇을 옥상으로 집합시켰다. “그렇게 불만이 많으면 평소에 얘기하지 이런 식으로 뒤통수 치나. 다면평가 한다니까 정의감과 양심이 샘솟냐.” 인사팀 담당자 말과는 달리 다면평가는 평가대상에 대한 추적이 가능했고 팀장은 인사팀에 절친한 동기가 있어 ‘회사판 CSI’를 가동했다. 이후 김 대리의 직장 생활이 어땠을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튀면 밟힌다
동기들보다 승진이 빠른 박 부장은 올해 인사평가를 앞두고 근거 없는 소문의 희생양이 됐다. 사내 익명 게시판에 ‘P부장 바로알기’라는 제목의 글이 떴다. 이름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업무 내용이나 인물 묘사를 보면 누가 봐도 당사자는 박 부장 본인이다. 거래처 관계자를 만날 때 일부러 비싼 술집을 가고 3차까지 내게 한다거나, 팀 회식을 할 때 여직원들에게 수위 높은 성희롱 발언을 한다는 식이다. “투서는 임원 인사 때나 있는 것으로 들었는데, 겨우 부장인 제가 표적이 될 줄은 몰랐죠. 억울하지만 익명게시판에 ‘난 그런 적 없다’고 해명하는 게 더 웃길 것 같아 그저 속만 끓이고 있습니다.”
○밥자리도 가려서 해라
김 대리는 작년 이맘때 회사 주변에서 지인과 저녁을 먹었다가 곤욕을 치렀다. 지인은 김 대리의 입사동기로, 입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경쟁회사로 옮겼다. 그날도 대수롭지 않게 그와 회사 근처에서 밥을 먹고 맥주를 한잔했다. 그런데 다음날 출근하자 사무실 분위기가 싸늘했다. 김 대리가 경쟁사 직원과 함께 있는 것을 본 회사 동료들이 그가 이직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을 낸 것이다. “그나마 받아줄 생각이 있는 곳이라면 억울하지도 않죠. 그렇잖아도 민감한 인사 시즌에 그런 소문이 퍼졌으니.” 그 후로 김 대리는 그 친구와 회사 주변에서는 절대 만나지 않는다.
○먼저 알면 뭐가 바뀌나
지난 5월 인사부로 발령난 이 차장은 요즘 쉴 새 없이 울려대는 휴대폰 문자 알림 소리가 귀찮을 정도다. 문자 내용은 대개 ‘오늘 저녁에 약속 없으면 소주나 한잔하자’며 직장 선후배들이 보낸 것이다. 물론 속셈은 따로 있다. “별 생각 없이 만나면 대부분 슬쩍 인사 얘기를 꺼냅니다. 승진을 기대하고 있거나 부서 또는 근무지를 옮기고 싶은 선후배들이 연말 인사 동향을 묻는 것이죠.” 특히 부서장이나 담당 임원이 바뀔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새로 올 상사가 누구일지에 대한 관심이 대단히 크다. 이 차장과 ‘약속 잡기’가 회사 사장님을 만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이유다.
‘마당발’ 안 차장은 평소 부서에서 인사통으로 불린다. 남다른 사내 정보망을 가동한 그의 인사 정보는 정확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인사철만 되면 안 차장의 주변에는 인사 정보를 캐내려는 사람들로 들끓는다. 지난해 인사 때도 안 차장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인사통 역할을 하느라 바빴다. 인사가 발표되는 오후 3시. 안 차장은 본인의 정보가 얼마나 적중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사내 인트라넷 게시판에 접속했다. 아뿔싸, 본인이 다른 부서로 발령난 것이었다. 본인은 인사 대상이 아닌 줄로만 알던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그후론 안 차장은 다시는 인사 얘기를 떠벌리지 않는다고 한다.
윤정현/김일규/강경민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