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가루 담합' CJ·삼양사, 삼립에 14억 배상하라
CJ제일제당, 삼양사 등 가격을 담합한 밀가루 생산업체들은 담합으로 인해 비싸게 밀가루를 산 제빵·제과업체인 삼립식품에 14억여원을 손해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중간 소비자’(원료업체 등에는 소비자지만 일반인이나 다른 업체에는 생산자 역할을 하는 경우)에 대해 담합업체들이 손해배상 책임을 진다는 대법원의 첫 확정 판단이라 향후 파장이 예상된다.

○대법원 “담합자들, 책임 못 면해”

대법원 2부(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삼립식품이 “가격 담합으로 밀가루를 대량 구매한 중간업체로서 손실을 봤다”고 주장하며 CJ제일제당과 삼양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CJ제일제당은 12억4000여만원, 삼양사는 2억3000여만원을 삼립식품에 배상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3일 밝혔다.

재판부는 “CJ제일제당, 삼양사 등 국내 밀가루 시장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는 회사들이 공동으로 밀가루 생산량(판매량)을 제한하고 밀가루 가격을 담합한 행위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이라며 “CJ제일제당, 삼양사 등이 도매상 공급가격을 담합했다고 주장하지만, 이 때문에 삼립식품과 같은 대량 수요처에도 가격 인상의 영향이 갔다”고 판단했다.

CJ제일제당과 삼양사는 “담합기간 동안 삼립식품에 장려금을 12억원 가까이 줬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장려금을 지급했다 해서 손해배상 책임까지 면책되지 않는다”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삼립식품이 빵 등 제품가격을 인상, 손해를 최종소비자에게 넘겼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제품가격 인상 여부는 삼립식품이 별도로 판단할 사안”이라며 역시 인정하지 않았다. 대신 재판부는 장려금 지급 사실과 최종가격 인상분을 참작해 삼립식품이 원래 주장한 총액인 37억여원 중 절반 이하만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유사소송 확대되나 업계 촉각

이번 대법원 판결에 대해 관련업계들은 삼립식품과 같이 밀가루의 ‘중간 소비자’ 업체들의 유사 소송으로 이어질지 여부에 주목하고 있다. 밀가루와 유사한 유통·생산구조인 설탕 등도 가능성이 높다.

산업계에서는 ‘중간 소비자’가 존재하는 전자, 자동차, 기계업계 등에 이번 소송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또 건설업계, 정유업계 등 담합 의혹으로 재판이 진행 중인 업계, 이미 법원 판결로 담합이 확정된 업계 역시 이번 대법원 판결의 영향을 피해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고운/주용석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