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11월28일 오전 9시8분


회사채시장에 자금이 몰리고 있다. 이 덕분에 기업들은 싼 이자에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신용등급이 A 이상인 우량 기업에만 해당된다. 투기등급인 BB 이하 기업들은 오히려 회사채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이 더 어려워지고 있다. 투자자들이 투기등급 채권에 대한 투자를 꺼려 회사채시장의 쏠림현상이 심화되고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사상 최저 금리에 따른 수혜를 투기등급 기업들도 누릴 수 있도록 제도적인 지원과 관련 법령 개정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쏠림현상 심화되는 회사채시장

28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올 들어 이달 27일까지 발행된 회사채(여신전문금융회사채 제외) 규모는 63조1330억원에 이른다. 회사채 발행 규모는 △2007년 20조8240억원 △2008년 25조900억원 △2009년 46조9780억원 등으로 해마다 커지고 있다. 2010년엔 42조9210억원으로 주춤했으나 작년엔 다시 63조1610억원으로 늘어난 뒤 올해도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회사채시장에 돈이 몰리면서 기업들은 앞다퉈 회사채 발행에 나서고 있다. 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터라 미리 자금을 확보하자는 기업도 상당수다. 하지만 투기등급을 받은 기업엔 먼나라 얘기다.

올 들어 투기등급 기업의 회사채 발행 규모는 8270억원으로 전체의 1.31%에 그쳤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던 2008년의 1조4270억원(전체의 5.69%)에 비해 현저히 줄었다. 이런 분위기는 ‘웅진사태’ 이후 더 심화되고 있다. 기관들이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의 회사채를 기피하면서 투자등급인 BBB급 기업들도 회사채 발행에 줄줄이 실패하고 있다. 그만큼 쏠림현상이 심해지고 있다는 얘기다.

◆미국시장에서 투기등급 비중은 24%

회사채시장에 돈이 몰리는 현상은 외국도 마찬가지다. 올해 미국의 회사채 신규 발행 규모는 2000년 이후 최대에 이를 전망이다. 올 들어 지난 9월까지 9840억달러(약 1068조1320억원)의 회사채가 발행됐다. 국채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회사채로 투자자들이 몰리면서 발행 여건이 개선된 덕분이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 쏠림현상이 국내처럼 심하지 않다. 올해 발행된 회사채 중 23.6%(2323억달러)가 신용등급이 BB 이하인 기업이 발행한 채권이었다. 신용등급이 낮더라도 회사채를 발행할 수 있다는 의미다.

투자자와 기업 간 기대수익률 차이 좁혀야

금융당국은 중소기업의 자금 조달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5월 ‘적격기관투자가(QIB) 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QIB 채권이 발행된 사례는 한 건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투자자와 기업 간 눈높이의 차이가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필규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조정실장은 “투기등급 회사채는 신용위험이 큰 만큼 투자자들에게 더 높은 이자를 줘야 한다”며 “하지만 다양한 정책자금을 이용할 수 있는 중소기업들이 높은 이자를 부담하는 걸 꺼리고 있어 투기등급 채권이 잘 소화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의 정책자금을 채권시장으로 유도하고 전환사채(CB) 등 다양한 채권 상품과 보강 수단을 활용해 투자자와 기업 간 기대수익의 차이를 좁히려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문화돼 있는 담보부사채신탁법을 개정해 중소기업의 채권 발행을 장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미현 법무법인광장 변호사는 “담보부사채신탁법을 이용하면 매출채권을 담보로 회사채를 발행할 수 있지만 그 절차가 까다로워 이 제도를 이용하기 힘들다”며 “이를 쉽게 고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성인모 금융투자협회 채권부장은 “국내 기관투자가들이 안정적인 자금 운용 관점으로만 회사채시장에 접근하지 말고 신용위험 분석 능력을 강화해 다양한 채권에 투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